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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에 미국 사람들은 칠면조 요리를 먹습니다. 추수감사절 하루 전날, 칠면조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지난 1년 동안 칠면조들은 행복했습니다. 농부가 아침 6시면 먹이를 줬어요. 아무리 똑똑한 칠면조라도 그 농부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추수감사절 아침, 자신의 인생이 급격하게 바뀔 것이라고 예상하긴 어려워요. 1년 내내 똑같은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죠. 하지만 추수감사절 아침 칠면조의 인생은 급격한 변화를 겪습니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죠. 이것이 특이점입니다.”
인공지능에 대해 다룬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동아시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김영사)에서 2045년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지금은 빠르면 10년 이내일 것으로 예측됩니다. 우리가 일상을 즐기던 칠면조처럼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착각하다가는 칠면조처럼 한순간에 목숨을 잃게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김대식 교수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도입됐을 때 가장 위험한 직업으로 콜센터 직원들을 꼽습니다. 지금 미국의 대기업들은 애프터서비스를 접수하는 콜센터를 인건비가 싼 인도나 필리핀에 두고 수십만 명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Her>에서 인공지능이 8316명과 동시에 마음을 나누고, 그중 641명과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기계가 동시에 수백만 명과 영어로 대화할 수 있다면 수십만 명의 일자리는 하루아침에 없어져”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김 교수는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화이트칼라족, 데이터를 가지고 일을 하는 직업들이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직업이 위기를 맞더라도 세 카테고리의 직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첫째, 사회의 중요한 판단을 하는 직업들인 판사, CEO 등은 자동화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절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둘째, 인간의 심리, 감성하고 연결된 직업들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약한 인공지능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상상하기 때문이죠. 셋째, 가장 큰 카테고리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직업입니다.”
딥러닝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 인공지능입니다. 그런데 딥러닝의 기반은 데이터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데이터가 없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뻔한 드라마는 딥러닝 기계가 1분에 1000편을 쓸 수 있기에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스토리를 쓸 수 없는 방송작가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런 일이 “20~30년 후에는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 아닐까요? 지난 3월9일 이세돌과 알파고가 첫 대결을 벌이고, 총 다섯 판의 바둑을 둔 이후 우리는 인공지능에 대해 크나큰 두려움을 갖게 됐습니다. 그 어떤 나라보다 큰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이런 이벤트가 한국에서 벌어진 것이 어쩌면 천만다행이지 싶습니다.
여러분 주변을 둘러봅시다. 이미 모든 분야에 ‘알파고’가 속속 도입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건축설계사가 설계도면을 그리려면 평면도, 단면도, 입면도를 따로 그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네댓 명으로 구성된 팀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시스템의 도입으로 3D 상태의 도면이 만들어지게 되자 이런 일은 창의력 있는 한 사람이 혼자서 해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돈벌이가 되던 고난도의 일이 빠르게 소프트웨어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지금 ‘알파고’는 잘나가던 중산층의 일자리부터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 누굴까요? 바로 강남의 1% 부자들입니다. 강남부자들은 이미 아이들의 조기유학과 명문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지식을 터득하는 사교육을 남들보다 앞서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진짜 걱정해야 될 세대는 기계가 못하는 것을 할 줄 알아야 하는 지금의 10대라고 주장합니다. 10대들은 “언제든지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세상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최대한 빨리 결론을 내서 거기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창의성’입니다. 김 교수는 “약한 인공지능, 인지자동화가 실천되는 순간 창의성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립니다. 창의적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여기서 창의적이란 새로운 가치, 즉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혹은 처한 상황과 세상을 냉철하게 분석할 수 있는 능력, 또는 분석해서 얻어낸 결론을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도전정신과 같은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얼마 전 치른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수적인 중산층이 살던 지역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불리는 강남에서도 야당이 승리해 큰 화제가 되었지요. 물론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대착오적인 노동법이나 사이버테러방지법 등에 집착하고 있는 정부와 새누리당에 기대할 바가 없어서는 아닐까요? 일부에 그치고 있지만 ‘딥러닝’을 시작할 정도로 미래의 대처가 빠른 이들이 밥그릇 싸움에만 혈안이 된 정치인들에게 지쳐 그들에게 경각심을 안겨 주려 한 것은 아닐까요? 선거 결과는 ‘여당의 참패’로 끝났습니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을 불안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대책들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 누구보다 정치인들에게 ‘창의성’이 시급해 보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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