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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 4서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고 자기수양과 절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입니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MB 관련 뉴스를 보면서 문득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최근 알려진 혐의들이 사실이라면, MB께서는 여러 가지 탈법비리로 수신, 제가하시고 꼼수로 치국하시며 평천하하신 듯 보입니다. 시민들의 촛불혁명이 없었다면 꼼수가 우리 사회 전반에 더욱 만연해서 ‘꼼수평천하’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사실 정수보다 꼼수를 생각해내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단순하게 사는 사람은 엄두도 못 냅니다. 최소한 MB 정도 돼야 꼼수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일반인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뇌의 영역까지 사용하면서 꼼수를 생각해내려면 얼마나 머리가 아프겠습니까? 꼼수를 생각해내시느라 불철주야 머리를 싸매시는 분들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낍니다. 보안관찰법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저는 얼마 전까지 ‘보안관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지난 2월21일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고 2월 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저에 대한 보안관찰처분은 허위사실을 담은 허위공문서를 기초로 한 것이었으며, 법무부가 저의 인권을 유린하는 위법한 처분을 반복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데 이번 판결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판결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어이없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검찰과 법무부가 저에 대해 ‘보안관찰 면제’ 결정이 아니라 ‘갱신 불청구’ 의견을 냈다고 하네요. ‘재범의 위험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를 보안관찰대상자로 남겨놓아 18년이 아니라 평생 ‘창살 없는 감옥’에서 계속 괴롭히면서도 재판을 통해 다툴 수 있는 길은 봉쇄하자는 것 같습니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역시 법을 잘 아시고 그 빈틈도 잘 아시는 분들입니다. 법치의 보루인 검찰과 법무부! 꼼수 생각해내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힘내세요!

보안관찰법은 유엔의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 회의에서도 인권침해를 이유로 우리나라 정부에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이상한 법입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이던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1기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이하 NAP)에서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재범 위험성에 대한 자의적 판단과 행정처분 형식의 결정 때문에 오용의 가능성이 큰 보안관찰법의 폐지를 권고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5년 후인 2012년, NAP에서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이유로 보안관찰법을 명확한 규정으로 개정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단계적 완화’ 입장으로 후퇴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 말고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 참 많은 모양입니다. 그때그때 정권의 눈치를 봐가며 꼼수를 준비해야 하니 힘드시겠습니다. 곧 3기 NAP가 나온다고 하는데 이번엔 ‘인권’만 고려하길 기대하겠습니다. 힘내세요!

MBC 문화방송의 사규 제12조는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사람은 MBC 직원이 될 수 없다는 ‘결격사유’에 관한 것입니다. 1호부터 6호는 공무원 결격사유인 국가공무원법 제33조나 방송법 제48조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MBC 사규에는 다른 회사 사규 어디에도 없는 이상한 조항 하나가 더 있습니다. “(제12조 결격사유 중) 7. 보안관찰법에 의한 보안관찰 처분이 집행 중이거나 집행종료 후 2년이 경과되지 않은 자”입니다.

우리 헌법 제15조에는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직업선택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의 제한은 법률로 ‘필요최소한’으로만 가능합니다. 보안관찰법에도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헌법쯤이야 가볍게 무시해주시는 MBC 사규의 꼼수입니다. 저 같은 보안관찰자의 권리 박탈 위에서 MBC에 근무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의 이런 어두운 사실들은 <PD수첩>에서 잘 밝혀내 주시던데요. 취재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헌법 위의 사규를 ‘발명’해내신 언론부역자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시절이 하수상하여 불안하시죠? 힘내세요!

만화와 드라마로 화제가 됐던 <미생>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꼼수는 정수로 받는다.” 바둑의 오랜 격언입니다. 정수를 두는 일은 저 같은 ‘보안관찰자’에겐 사실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꼼수들에 대해 좀 미련해보여도 그냥 정수로 받을 생각입니다. 우리 사회가 더 많은 분들이 꼼수가 아니라 정수를 두는 곳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들이 정수를 두며 떳떳하게 사는 삶을 보여주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따라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일반 국민들 대부분은 그렇게 살고 계시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정수를 두면서 걸어가며 곧고 넓은 정도(正道)에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에게 수고하신다고, 힘내시라고 환하게 웃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강용주 | (재)진실의힘 이사·아나파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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