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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하루는 산행을 간다. 자주 가는 곳은 가평 53산이다.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화악산을 필두로 명지산, 연인산, 운악산, 유명산 등 가평에는 좋은 산들이 많다. 땀 흘리며 능선에 올라 정상을 향해 걸으면 몸과 마음이 상쾌해진다. 가평 53산을 찾아가면서 발견한 것은 산행 중 만나는 이들이 주로 어르신들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변화했음을 가평 53산 산행에서 실감하는 셈이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수명은 빠르게 늘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 남자의 기대수명(출생아가 앞으로 살 것으로 기대되는 연수)은 79.3세이고, 여자는 85.4세다. 기대여명(특정 연령자가 앞으로 살 것으로 기대되는 연수)의 경우, 60세를 기준으로 볼 때 남자는 82.5세이며, 여자는 87.2세다. 환갑을 맞이한 이들이 평균 20년 이상은 더 살 수 있다는 통계다.
문제는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게 반가운 일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는 만큼 병을 안고 사는 기간 또한 증가하고 있다. 다시 통계청 자료를 보면, 남성의 유병 기간은 14.6년, 여성은 20.2년이 추계된다. 60세를 기준으로 볼 때 남은 생애의 4분의 3 정도는 이런저런 병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가평 산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건강하고 여유롭게 산행을 즐기고 있으니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분들일 것이다.
고령화가 가져오는 이러한 변화 가운데 주목할 것은 ‘100세 시대’의 개막이다. 100세 시대란 우리 인간의 수명이 100세에 달하는 시대를 말한다. 경영학자 린다 그래튼과 앤드루 스콧의 저작 <100세 인생>을 보면 흥미로운 자료가 나온다. 2007년생 아기 절반이 생존했을 것으로 예측되는 최후의 시점에서 그들의 나이는 미국 104살, 독일 102살, 프랑스 104살, 영국 103살, 그리고 일본 107살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보는 11살 아이들의 절반은 21세기를 가로질러 2107년에도 살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100세 시대가 이렇게 열리고 있는데 이에 대한 사회적·개인적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100세 시대의 장기적 대비보다 당장 노인들의 삶의 질 향상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맞는 이야기다. 50%에 육박하는 노인빈곤율을 포함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노인들의 삶의 질은 매우 낮다.
국제노인인권단체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노인의 소득안정성, 건강상태, 취업 가능성, 사회적 연결 정도 등을 기준으로 노인이 살기 좋은 나라를 평가했을 때 2015년의 경우 우리나라는 96개국 가운데 60위에 머물렀다. 아시아에서는 일본(8위), 베트남(41위), 중국(52위)보다 낮은 순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단중기적 시각의 노후대책도 시급하지만 중장기적 맥락의 100세 시대 개막에 대한 준비 또한 중요하다는 점이다. 모더니티가 시작된 이래 근대인에게는 교육·취업·은퇴라는 삶의 경로가 주어져 있었다. 그런데 100세 시대가 열리면서 이러한 경로는 새롭게 재구성돼야 한다. 당장 60세 전후로 은퇴한 다음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는 노인세대나 노인세대로의 진입을 앞둔 장년세대에겐 매우 중요한 실존적 문제다. 가난하고 외롭고 병든 나날로 이어지는 삶이라면 100세 시대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미래는 열려 있기 때문에 두려워만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인구 변화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이라고 말한 피터 드러커의 주장처럼, 100세 시대의 도래는 불가피하게 진행될 미래다. 100세 시대 개막에 맞서서는 국가의 역할과 개인의 태도 모두 중요하다. 먼저 국가는 고령사회의 도래에 대처하는 노후복지를 강화하는 동시에 100세 시대를 예비하는 고용 및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선구적으로 ‘100세 시대 위원회’와 같은 조직을 만드는 것도 한번 검토해 볼 만하다.
개인적 차원의 준비도 중요하다. 은퇴한 다음 여생을 설계하는 것은 너무 늦다. 젊은 세대의 경우는 앞으로 하나의 직업이 아닌 둘 이상의 직업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취업과 은퇴를 한 번만 하는 게 아니라 두세 번 반복할 수 있다. 이른바 ‘인생 이모작 시대’가 열리는 만큼 100세 인생 준비에 적극적 관심을 갖고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 봄이 성큼성큼 다가오니 명지산과 연인산을 잇는 아재비고개에 가면 이른 봄꽃들이 피어있을 것이다. 복수초와 변산바람꽃을 보러 오는 유쾌한 어르신들을 만날 시간이 기다려진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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