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과일 먹는 사람은 그 열매 맺은 나무를 생각하고, 물을 마시는 사람은 그 물이 나온 근원을 떠올린다.” 여기서 유래한 ‘음수사원(飮水思源)’은 일상의 사소한 것을 누리면서도 그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말을 백범 김구 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데에는 아마도 이 구절의 원출전인 <징조곡(徵調曲)>의 작가 유신(庾信)의 일생에서 느낀 바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망국의 시름을 품고 적국에 사로잡혀 살았던 유신은, 그의 재주를 아낀 적국 왕의 극진한 예우에도 불구하고 28년 동안 조국을 잊지 못하며 슬프고도 아름다운 명편들을 남겼다. 머나먼 중국 땅에서 비장하게 활동하던 백범의 마음 역시 늘 조국에 있었을 것이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한·중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시진핑 주석이 백범의 아들 김신 장군이 항저우 인근 방문 때 “음수사원 한중우의”라는 구절을 남겼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중국이 한국의 임시정부를 지원해준 점을 거론하여 항일 전선에서 함께한 우군이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한·미·일 공조를 은근히 비판하는 뜻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2년 전 서울대 강연에서 임진왜란 때 함께 일본과 맞섰던 역사를 언급한 전례에서도 시 주석의 의도한 바를 유추할 수 있다.

이어진 회담에서 시 주석이 말한 구동존이(求同存異)는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어 추진하고 서로 다른 부분은 남겨둔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른 부분도 바꾸어가자는 뜻의 구동화이(求同化異)로 답했다. 진정한 관계 개선의 측면에서 보자면 박 대통령의 발언이 진일보한 것이다. 다만, 서로가 말하는 ‘다른 부분’이 무엇이고 과연 변화 가능한 것인지가 중요하다. 중국과 우리의 입장이 같을 수 없는 지점이 적지 않겠으나, 현안으로 말하자면 사드 배치 문제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그 다름을 인정하고 경고하면서 그러나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은 여전히 있음을 선포하였다. 자신이 지킬 수 있는 말을 하고 우리의 결단을 요구한 것이다. 그에 비해 구동화이는 우리 의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상대에게 어떤 압박도 줄 수 없는 말이다. “나의 넓지 않은 어깨에 오천만 국민의 안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밤잠을 자지 못하며 걱정하고 있다”는 말에 아무리 진정성이 담겨 있다 하더라도, 그 호소가 과연 외교적 언사로서 적절한 것이었는지 의심스러운 것도 그 때문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일반 칼럼 > 송혁기의 책상물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락과 천리마  (0) 2016.10.05
신념의 정치, 바람의 정치  (0) 2016.09.21
국기를 세우려면  (0) 2016.08.24
여름날의 얼음  (0) 2016.08.10
망국의 징조  (0) 2016.07.27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