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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딸을 시집보내면서 이렇게 가르쳤다. “반드시 남모르게 돈을 모아라. 남의 집 며느리가 되어서 오래 눌러사는 건 행운이고, 대개는 내쫓기게 마련이다.” 딸이 그 말대로 몰래 돈을 모으다가 시어머니에게 들통나서 쫓겨났다. 그런데 딸이 시집갈 때보다 갑절이나 많은 돈을 숨겨가지고 돌아오자, 아버지는 자신의 지혜 덕분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이 이야기를 인용해 두고 한비자(韓非子)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남의 신하가 되어 관직에 나가 있는 자들이 모두 이와 같다.”
(출처: 경향신문DB)
남보다 높은 지위에 올라 특별한 대접을 받는 이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직분과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본분은 망각한 채 나라가 망하든 말든 그 지위를 이용해서 자기 배 불리는 데에만 혈안이 된 자들이 너무도 많음을 비판한 것이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지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모든 원칙에 앞선다. “고관대작의 신하들이 군주의 얼굴빛만 살피며 복종하느라 모든 일을 정상에서 벗어나게 처리한다면, 그 나라가 망하는 건 시간문제다.” 관포지교의 주인공 관중의 사상이 담긴 <관자(管子)>에 나오는 말이다.
나라가 망할 징조는 그 밖에도 많다. 군주가 고집이 강해서 남과 화합하지 못하고 건의하는 사람과 대결하여 이기려고만 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군주가 세심하게 살피지 못하면서 자화자찬만 늘어놓고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른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군주가 실제 증거를 확보하지 않고 자신이 선발해서 요직에 앉힌 특정인들만을 창구로 삼아 판단한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먼 나라와의 동맹을 믿고 가까운 나라를 등한히 하며 강대국의 구원을 기대하여 이웃 나라를 얕본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권세 있는 신하들을 통해서 관직을 구할 수 있고 뇌물을 써서 이권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자신의 재산과 가족을 해외로 빼돌려 둔 자가 높은 자리에 올라서 정치를 좌우한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일반 백성이 재상을 신뢰하지 못하는데 군주가 그 재상을 신임하여 감싸고돈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모두 한비자가 말한 ‘망국의 징조’들이다. 물론 요즘 이야기는 아니고, 그저 군주가 다스리던 시절의, 2000년도 더 된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