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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중국 방문 중에 터뜨린 자신의 개헌 발언을 거두어들임에 따라 급물살을 탈 것 같았던 개헌 논의는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평소 실언이 잦은 김무성 대표이지만 이번 발언이 완전한 돌발성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김 대표는 오스트리아 같은 이원집정부제 정부를 거론하면서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지듯 할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가 “개헌 논의는 경제 블랙홀이 될 것”이라면서 반대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가 했더니 하루 만에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여러 정황으로 박 대통령이 김 대표에 대해 강한 불만 내지는 경고를 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히 경제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은 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서 개헌 논의가 없더라도 실패하게 되어 있으니 ‘경제 블랙홀’은 한낱 핑계라고 하겠다. 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개헌 논의가 박 대통령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하는 것임을 김무성 대표는 잘 몰랐던 것 같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개헌 방안은 4년 중임제 대통령과 분권형 대통령제인데, 이런 논의가 나오는 것 자체가 박 대통령한테 불쾌할 수밖에 없다. 중임제 대통령 개헌 논의만 해도 그렇다. 칠레의 미첼레 바첼레트 대통령처럼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나 단임제 때문에 중임을 못하고 퇴임해야 하는 모습을 본 국민이 중임제 개헌을 하자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중임 허용에 방점이 찍힌다. (실제로 바첼레트는 퇴임 후 4년이 지나서 선거에 다시 당선되어 지난 3월에 대통령으로 두 번째 취임했다.) 하지만 우리가 4년 중임제를 거론하는 이유가 성공한 대통령에게 단임 5년이 너무 짧기 때문이 아님은 너무나 분명하다.

1987년 민주개헌 당시 단임제를 택한 이유는 중임을 허용하면 현직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중임을 허용하는 미국의 경우에도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 동안 첫 번째 임기보다 더 잘했던 경우가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나오는 중임제 개헌론은 “소통도 안되는 무능한 대통령에게 5년은 너무 길기 때문에 4년 만에 갈아 치울 수 있도록 바꾸자”는 이야기가 된다.

분권형 대통령 개헌론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 의회의 다수당인 경우에는 대통령은 ‘제왕’이 될 수 있다. 언론의 자유와 법원과 검찰의 독립 같은 법치주의 장치가 완비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도 제왕적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서 큰 문제를 야기했다. 그런 제왕적 대통령이 언론을 탄압하고 조작하며, 검찰을 자기 집사 부리듯이 한다면 그것은 바로 ‘독재’다.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킴으로써 이 같은 독재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국감 대책회의에서 자신의 개헌 관련 발언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과하고 있다. _ 연합뉴스


분권형 대통령제는 국민이 직선으로 선출하는 대통령에게 외교와 국방 권한을 주고, 국회 다수당이 구성하는 내각에 내정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인데, 이런 정부형태는 성공하기 어렵다. 혼란을 일으켜 나치의 등장을 초래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전형적인 경우다. 이 같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이야기도 박 대통령에게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경제·사회 등 내정 전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각에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는 대통령이 문제라는 냉소적 뉘앙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 가지도 못하면서 권한만 많이 갖고 있는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론으로 표출된 것이다. 친박계라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마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을 제시했으니 이 역시 흥미롭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는 견해가 60%에 달하지만 구체적인 개헌방향에 대해서는 4년 중임제와 분권형 대통령제로 의견이 갈리고 있다. 여하튼 국민 다수가 현재와 같은 대통령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음을 강하게 표출한 것이다. 하지만 분권형 대통령제는 물론이고 4년 중임제 대통령도 단점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제도를 바꾸면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개헌이 과연 가능하고 바람직한지는 접어 두더라도 이 시점에서 제기되는 개헌 논의 자체가 ‘불통과 독선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보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 때문에 개헌 논의가 청와대에 그토록 불편한 것이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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