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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따끔한 달. 입하와 소만은 물론 복면한 날들이 징검다리처럼 기다린다. 오월에는 비가 자주 와야 한다. 억수는 아니래도 비가 웬만큼 필요한 건 까닭이 있다. 기쁘고 서러운 날들이 줄줄이 대기하는 달, 5월.

이런 마음의 생태계가 고리가 되어 그동안 이곳저곳 산으로 돌아다니며 만났던 여러 무덤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여수에서 훌쩍 건너뛴 거문도에서 동백으로 단장한 무덤. 제주 별도봉 오름에서 왕벚나무와 쥐똥나무가 호위하는 무덤.

그렇게 멀리 가서 햇빛 끝에 서면 이 무덤을 만들 때의 여러 소리들이 바람결에 실려오는 듯하다. 개복 수술하듯 땅을 열어놓은 곳으로 긴 행렬의 만장 펄럭이는 소리, 딸랑딸랑 요령에 맞춰 메기는 상여소리, 뒤따르던 상주들의 타박타박 발소리와 목울대를 치는 곡소리, 지켜보는 조문객들의 탄식소리. 유족들이 흙 한 줌을 손에 담아 관 위로 뿌리고 나면 상여꾼들이 달려들어 흙을 꼭꼭 다진 뒤 봉분을 완성하는 동안 삽과 삽이 부딪치는 소리 속에 길고 느린 노래와 함께 막걸리도 뿌렸지. 이윽고 곡하는 소리가 길게 여운을 끌며 사라지고 막내딸의 흐느낌만 들릴락 말락 할 때, 꼭 등장하는 게 있었지. 해도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어디선가 팔랑팔랑 날아와 한편에 꽂아둔 삽자루에 앉아 망자의 영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훌쩍 몇 바퀴 돈 뒤 떠나는 영리한 나비. 슬프기 이를 데 없는 죽음을 저리도 소슬하게 거두어가는 무덤들.

언제 적 거제도 북병산에서 만난 무덤이 마음을 붙든다. 완만한 임도를 따라서 천천히 내려올 때, 동네 입구에 자리한 무덤이었다. 감자 캐다 말고 저승에 잠깐 마실이라도 다녀오시겠다는 듯 밭가에 자리 잡은 무덤. 바로 앞에 기특한 자식들처럼 편백나무들(사진)이 도열해 있다.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발길을 돌릴 때 그간 만났던 참 안 잊히는 무덤들도 떠올랐다.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면 집으로 가지고 와서 현관에 걸어두고 싶을 만큼 따끈한 풍경들. 문득 내 고향 쪽 하늘을 바라보면 어김없이 바람결에 실려오는 호루라기 소리!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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