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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논단]시간은 변화를 강제한다
류근일|언론인
김정은과 그 옹위 세력에겐 세습체제와 권력블록의 계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초미의 관심사일 것이다. 그것을 위해 그들은 구체제의 변화보다는 그 신성불가침론에 집착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계속성의 정치’뿐 아니라 ‘변화의 정치’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것은 알고 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새겨야 할 것은 역사는 변화 그 자체라는 점이다. 북이 초기에 받들었던 마르크스 이론부터가 변혁의 이론이다. 북이 아직도 좋아할 마오쩌둥도 사회주의 사회에도 변혁을 불러올 모순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북도 이젠 변화를 필요로 한다. 내부 모순이 크기 때문이다. 변해야 할 현실과 변하지 않으려는 권력 사이의 모순이랄까.
김정은과 그 옹위 세력이 사회 전반의 변화를 소화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먹고 사는 방법론과 관련해서는 변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해야 한다. 대놓고 인정할 수 없다면 속으로라도 그래야 한다. 아니, 이미 알고는 있을 것이다. 발설했다가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 뿐이지. 그러나 이젠 변화의 화두를 더 이상 덮어둘 일이 아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북이 버려야 할 사고방식 두 가지만 말하겠다. 먹고 살기의 어려움이 남한 탓, 미국 탓이라는 떠넘기기가 그것이다. 체제 유지를 하자니 “외부의 적 때문에…”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의 경제 실패는 남한 탓, 미국 탓이 아니다. 소련의 붕괴도 그 자체의 생산성 쇠퇴와 그것을 불러온 체제 경직성 탓이었다. 북의 경제파탄도 그 자신들 탓이다. 자기 탓은 인정하지 않고 남 탓만 해가지고는 ‘억지로’의 방어는 될지 몰라도 주민생활 개선은 안된다.
북이 남 탓 아닌 자기 탓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으려면, 예컨대 중국의 개혁·개방에 관해 섣불리 보고서 한 장 잘못 올렸다가 숙청당하는 일 같은 게 없어야 한다. 언로(言路)의 개방까지야 금기에 속한다지만 그래도 권력 내부에서만은 허심탄회한 논의가 허용돼야 이런저런 자기 교정의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또 하나 버려야 할 사고방식은 ‘세계시장=식민주의’라는 고정관념이다. ‘민족적=반(反)시장’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세계시장에 들어가 9위의 교역국이 된 한국을 ‘식민지’라 부르는 것부터가 그런 인식착오를 반영한다. 시장은 때론 실패하기도 한다. 그 때마다 국가가 나서서 개입하곤 한다. 그러나 시장을 아예 없애버린 실험은 실패했다. 배급도 변변히 못주면서 시장을 적대하는 방식으로는 주민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없다.
북은 외부에 “무조건 달라”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 지원만 요구해 왔다. 그러나 언제까지 ‘모기장 친 채’ 무기한 외부지원에만 의존할 작정인가? 그보다는 자생력을 키울 방도-시장을 점진적으로, 제한적으로라도 도입하는 편이 합당한 대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북은 혹시 “그러려면 미국이 먼저 우리 체제를 보장해야…”라고 말할지 모른다. 도대체 혁명과 전쟁을 누가 시작했는데 그러는가?
북이 위기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소련 붕괴 이후다. 불과 20년 전부터일 뿐이다. 그보다 훨씬 전인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혁명전쟁과 테러와 폭파로 줄곧 국가 존망의 위기를 체감하며 산 쪽은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북이야말로 “존엄한 우리 체제를 감히…”라고만 하지 말고, ‘존엄한 남한 체제’도 자꾸만 그렇게 ‘혁명’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북이 버려야 할 것은 결국 교조주의다. 자기 탓 시인하지 않는 것, 시장 적대하는 것, 이게 다 교조주의의 산물이다. 개인 신격화 정치가 북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던 시대가 이제 과거로 넘어갔다. 유훈통치는 그 넘어감을 멈추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시황과 그 후계자도 그걸 하지 못했다. 권력자가 시간과 변화의 철칙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건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를 지껄인 것이다. 북의 신년 공동사설도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흘러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꾸로다. 시간이 변화를 강제한다. 먹히지 않더라도 한 마디 들려줄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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