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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서울대 교수·사회학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번 선거는 특이하게도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그 최종 선택에 이르는 과정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가 더 중요한 선거가 되고 있다.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선거의 속성상 결과를 예단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이번 선거의 예측 가능성은 적어도 2008년 총선 때만큼은 높다고 생각한다. 정당의 틀 안과 밖을 합쳐서 야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후보들이 저마다 다른 장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통합 후보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잘 헤쳐나간다면 최종적인 선택이 누가 된다 하더라도 기대를 걸어볼 만한 여지는 충분히 있다.

여러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예측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선거라고 한다면 이번 선거가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안개 속을 헤매게 될 공산이 높은 내년 양대 선거의 안개를 걷어내 줄 기회가 이번 선거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오세훈 두 시장을 거친 서울시정 10년과 이명박 정권 3년 반을 겪으면서 국민들은 정치학습을 단단히 해야만 했다. 시정과 국정이라는 최고의 공적 영역이 사익에 의해 흔들리고 공과 사의 마지막 경계선조차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공을 위해 사를 버린 인물들의 등장에 환호했다. 정권 교체를 원하는 시민사회의 에너지는 이미 충만해 있는데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최종 선택에 이르는 과정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 첫째로, 정당의 경계선 안에 있는 후보나 밖에 있는 후보나 할 것 없이 정당 정치를 깊이 고민하고 합의해야 한다. 
박원순 변호사가 일단 정당의 바깥에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은 정당 정치의 위기이고 특히 야당의 위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당장 민주당 입당을 강요할 명분은 없다. 1987년 이후 투표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대의제 정치의 틀 바깥으로 이탈한 절반 이상의 유권자들을 끌어안는 데에 실패해온 책임이 야당에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박 변호사는 정당 정치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나중에라도 민주당에 입당할 가능성을 닫지 않고 있다. 야권 후보 통합경선은 시민사회에 축적된 정치적 열망을 정당 정치의 틀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변화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민주당이 기득권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함은 물론이다. 

둘째로, 통합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은 물론 그 후 최종 투표일에 이르기까지 선거운동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돈과 조직의 힘을 최소화하고 투명화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 SNS로 대표되는 뉴 미디어가 희망버스라는 감동적 연대를 이미 만들어냈는데, 투명한 선거를 만들어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곽노현 교육감 사건의 경우 본인의 선의와 정당함을 믿는다 하더라도 이미 그를 지지했던 민주적 시민들에게는 타격이 되었다.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는 돈과 조직을 활용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선거방식에 있었다.

셋째로, 비교적 예측 가능성이 높은 이번 선거를 통해 백화제방의 창의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채택되고 실험되어야 한다. 작년 지방선거 이후 한국의 선거는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소셜 선거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과거의 선거가 흩어진 유권자들에게 조직화된 정치집단이 다가가는 것이었다면, 소셜 선거는 네트워크로 연대한 유권자들이 스스로 의제와 후보를 선택하는 선거이다. 
많게는 20퍼센트 이상 앞서 가던 여당 후보가 낙선하는 일들이 여러 차례 벌어졌고, 이것은 정치에 절망하고 투표하지 않던 시민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구체적인 증거가 투표율 상승이다. 안철수 현상을 통해 이미 한 차례 확인되었듯이, 구식 선거의 틀 안에 존재하는 박근혜 대세론은 새로운 선거에서는 단 며칠 만에 붕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선거에 맞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실험하기에는 내년의 양대 선거는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선거방식과 정책은 이번에 검증되고 내년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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