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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 변호사
2009년 8월 일본 중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여당 자리를 잃고 민주당이 집권을 했다. 자민당이 제2당으로 밀려난 것은 1955년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에 민주당은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큰 호응을 얻었다. ‘콘크리트’는 일본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토건사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세금도 낭비하고 환경도 파괴하는 토건사업의 고리를 끊겠다는 민주당의 공약은 자민당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만들었다.
일본형 토건사업의 대표적인 예는 바로 댐이었다. 댐이 좋은 시설이라고 알고 있는 시민들이 많지만, 사실 댐건설은 폐해가 더 큰 토건사업이다. 많은 땅이 수몰될 뿐만 아니라, 주변지역에 안개가 발생하는 등 기상이 변화해서 농업에 피해를 입히고 생태계를 교란한다. 사업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마련이어서 많은 세금이 낭비된다. 한마디로 건설업자에게만 좋은 일을 시켜주는 사업이다.
그래서 일본 민주당 정권은 집권 초기에 건설 중이던 댐을 백지화하고 낡은 댐을 해체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물론 중간에 기득권층의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실제로 댐건설을 철회하고 댐을 해체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최소한 일본에서 새로운 댐을 건설하겠다는 것은 사회적 동의를 얻기 어렵게 되었다.
경북 영덕군 달산면 주민들 달산댐 건설 반대집회 (출처: 경향DB)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댐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현 정부는 4대강에 거대한 ‘보’들을 건설해서 녹조로 강을 뒤덮더니, 그것으로 모자라 영양댐, 영주댐, 지리산댐 같은 대규모 댐들을 곳곳에서 추진하고 있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 일대에 추진 중인 영양댐은 처음에는 구미산업단지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간에 경산산업단지에 용수를 공급하는 것으로 목적이 바뀌었다. 목적도 불분명한 댐인 것이다. 수요가 분명해서 댐을 건설한다기보다는 댐을 건설해야 하니까 수요를 끼워 맞춘다는 의혹을 가지게 하는 대목이다. 더구나 예비타당성조사를 해 보니 댐건설은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영양댐은 계속 추진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내년 예산에 본타당성조사 용역예산 24억원을 집어넣으려 하고 있다.
10여년 전에 폐기됐던 지리산댐 건설계획도 슬그머니 부활했다. 지리산 계곡에 높이 140m가 넘는 댐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리산댐은 홍수조절용 댐이라는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 같은 최소한의 절차도 생략하고 있다. 사업비 500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아야 하지만, 재해예방 목적인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는 허술한 법조항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내성천은 강변 전체가 모래톱으로 되어 있어 생태적 가치가 높은 낙동강 지류이다. 그런데 내성천 일대를 수몰시키는 영주댐 공사가 진행 중이다. 서울 여의도보다 넓은 땅이 물에 잠길 뿐만 아니라, 하류 마을에서는 아름다운 모래톱이 사라지는 등 추가적인 환경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댐건설은 대규모 공사인 만큼 이권도 크다. 영양댐의 사업비는 3139억원, 지리산댐의 사업비는 9897억원, 영주댐의 사업비는 8797억원에 달한다. 물론 공사는 대형건설업체들이 수주한다. 입찰담합 의혹도 제기된다. 영주댐 공사와 관련해서는 삼성물산과 대우건설 간에 담합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문제가 많고 타당성도 의심스러운 댐건설은 중단돼야 한다. 이미 미국이나 프랑스는 댐이 인간에게 주는 이익보다 생태계를 교란함으로써 발생시키는 문제가 더 크다고 판단해서 낡은 댐들을 해체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댐을 짓겠다고 난리다.
댐을 지어서 이익을 보는 것은 건설업체들뿐이다. 그리고 토건사업을 벌여야만 자기 조직을 유지·강화할 수 있는 건설관료들과 수자원공사뿐이다. 반면에 피해를 보는 것은 주변 농민들과 미래세대에 넘겨줘야 할 아름다운 자연이다. 소중하게 쓰여야 할 공적인 재원이 낭비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민 모두가 피해자일 수 있다. 이제 돈은 콘크리트에 쏟아붓지 말아야 하고, 강은 흐르게 놔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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