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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 꾀병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 박준(1983~ )





△ 시 한 편을 써내려가는 힘은 어쩌면 유서를 쓸 때의 그것과 같다. 이런 경우 견딜 수 없음을 견디기 위해, 언어로 삶을 교환하는 일은 오직 시다. 우리는 이런 시를 겪고 나면 자주 몸이 아프다. 내가 시를 읽은 것이 아니라 시가 나를 읽어서, 시의 정황 속에 우리를 놓아두고 오기 때문이다. 꾀병이라고 했다. 몸살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통증은 엄살에 의한 통증이겠지만 이토록 아프고 아름다운 엄살이 있다면, 우리는 그 꾀병을 조금씩 나눠 앓고 싶다.


곁에서 오래 머물던 귀신, 시인이 맞은 살(煞)은 ‘미인’으로 표상되고 있는, 이미 이곳에 없는 몸의 기억이다. 몸의 운명이다. 때문에 화자는 미인을 만나기 위해 먼저 미래에 가 살고 온 셈이다. 자신에게 낀 모질고 독한 살을 풀어내며, 자신의 장례를 치르는 아픔을 먼저 앓고 있다. 정해진 제 삶을 다 살아 늙어버린 통증으로 이곳의 결을 느낀다. 괜찮다고 이젠 참을 만하다고, 그렇게 유서를 쓰는 것이다. 여기 없는 미인을 “보고 싶은 듯 눈가를 자주” 비비면서, 꾀병 아닌 꾀병을 앓았다고 고백을 해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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