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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 동아대 교수·문화연구
이번 올림픽에서 양학선의 경이적인 경기력에 탄성을 지르기도 했고 일약 세계 정상으로 부상한 펜싱을 보며 참으로 대견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를 가장 감동하게 만든 선수들은 따로 있다. 장미란과 여자핸드볼 선수들이다. 장미란은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체육인이다. 그런 그가 아마도 마지막이 될 올림픽 무대에서 4위에 머무르고는 무대 위에서 바벨에게 인사를 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2차 연장 끝에 승리를 내준 여자핸드볼 선수들의 눈물은 나의 가슴에도 온전히 전해졌다. 경기가 끝났는데도 화면을 멍하니 보게 만든다. 터질 것 같은 감정을 끌어안고 다시 내일을 기약해야만 하는 순간. 이는 스포츠에서만 가능한 감동이다.
여자핸드볼 대표팀 선수들이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뒤 코트를 떠나고 있다.
(경향신문DB)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오직 메달에만 미쳤다. 금메달이라면 살짝 정신줄도 놓아줘야 하는 언론의 사명과 국민적 의무가 있는가 싶다. 한국인들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메달을 좋아한다. 일단 메달을 따야 감동이 가능하고 ‘자랑스럽다’는 칭호는 금메달을 따야 허락한다.
우리의 ‘금메달병’은 이제 고쳐야 한다. 대회 목표를 금메달 수로 정하고 금메달 수만으로 순위 매기고 금메달 가지고 ‘자뻑’하는 것은 은메달과 동메달 수상자들에 대한 모욕이다. 그래서 2004 올림픽 유도에서 동메달 따고 아주 좋아했던 최민호가 체육계와 언론계의 무시에 열 받아서 소주 일곱병을 마셨다는 것 아닌가.
국민들의 감격과 격려와 성원은 왜 금메달리스트에게만 향하는가. 금메달 따면 ‘국격’이 올라가는가. 자메이카 선수가 육상 100m 우승하고 우간다 선수가 마라톤 우승했다 해서 우리가 그 나라를 ‘선진국’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왜 금메달리스트만 대접하고, 왜 이들에게만 수억원의 격려금과 포상금을 주고, CF 출연 제의를 하는가. 미국이나 일본 모두 메달 색깔 구분 없이 대접하고 방송 출연도 한다.
금메달 너무 좋아하지 말자. 우리나라에서 비인기 종목의 운동선수는 고대에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했던 검투사와 다를 바 없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건다. 여기에서 성공 못하면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엄청나게 맞고 공부도 못하게 하지만 오직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참는다. 실패했을 때의 비참을 앞서 간 선배들을 통해 알기에 그들은 자기 몸이 부서지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바친다. 또 그들은 광대다. 평소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올림픽이라는 ‘4년장’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왁자지껄해지면 한 판 몸짓으로 사람들을 웃게 하고 즐겁게 해주니 말이다. 그러나 장이 끝나면 이들은 다시 보이지 않는 인간이 된다.
자식에게 이런 광대와 검투사를 권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요즘 운동선수가 줄고 있다. 운동선수로 성공할 확률도 매우 낮지만 무엇보다 운동을 하다가 관뒀을 때 대안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에서의 운동은 너무 힘들다. 격리된 단체생활에 폭력도 문제이다. 고등학생 선수가 아침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훈련을 한다. 지도자는 또 어떤가. 이번에도 몇몇 지도자는 “요즘 선수들 배가 너무 불러서…”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다” 등 반세기 전의 머리를 선보였다. 이러니 누가 운동을 하겠는가.
일본은 등록선수가 축구 93만명, 야구 115만명, 농구 62만명, 탁구 30만명, 핸드볼 9만명인데 한국은 축구 2만명, 야구 9000명, 농구 2000명, 탁구 1600명, 핸드볼 2000명이다. 선수가 없으니 소수의 선수를 혹독하게 훈련시킬 수밖에 없다. ‘스포츠코리아’에서 운동은 악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니 선수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은 ‘스포츠 강국’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검투사 강국’이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했던 한 구기종목 팀은 선수들의 절반이 한부모 가정이나 고아 출신으로 구성되었다. 협회 차원에서 고아원팀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들이 경기에서 혼신을 다하는 모습, 눈물 없인 볼 수 없다. ‘스포츠 강국’ 코리아의 속살은 이렇게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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