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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 | 전남대 교수·철학


 

런던올림픽이 끝나가고 있다. 용감한 녀석들의 말처럼 한숨 대신 함성으로, 걱정 대신 열정으로, 포기 대신 죽기 살기로 힘을 겨룬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올림픽 이념(Olympism)이 말하듯 운동은 사람이면 누구나 차별 없이 누려야 하는 인권이다. 그러니 세계인의 운동(Sport) 축제인 올림픽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증진하며 평화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문화 및 교육 운동(Movement)이어야 한다. 따라서 운동(M)을 포기한 운동(S)은 사람이 아닌 돈의 파티일 따름이다. 


 올림픽에 대한 찬사와 비판은 다양하다. 한쪽이 세계인의 축제라며 환성을 지를 때 다른 쪽은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를 확대하는 환영이라고 조롱한다. 세계시민은 국가나 민족, 혹은 그것이 자랑하는 역사나 특정 상품과 자신의 정체성을 배타적으로 일치시키는 대신 다양한 이질적 문화를 횡단하며 그 가치를 동등하게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금메달 수에 따라 일렬로 순위를 매기는 우리에게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가 아니라 국가 간 무한경쟁, 곧 전쟁일 뿐이다. 올림픽 헌장에 따르면 “올림픽 경기는 개인이나 팀 종목에서의 선수 간 경쟁이지 국가 간 경쟁이 아니다”. 그러니 대한체육회가 제시한 목표인 10-10은 올림픽 헌장을 부정하는 블랙 코미디다. 


(경향신문DB)


전사, 출전, 군단, 전술, 적진, 승전과 같은 전쟁 용어들로 중계되는 올림픽은 만국에 의한 만국의 전쟁인 세계대전의 다른 이름이다. 그렇다고 올림픽을 가상적 국가항전을 통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체계로 치부하며 냉소적으로 비아냥거리는 것은 현실의 변화를 읽지 못한 처사다. 오늘날 시장의 요구에 부역하지 않는 국가, 자본의 논리에 복종 않는 민족은 올림픽에서 단 한 칸의 자리도 차지할 수 없다. 

①국가대표라는 상징적 이름으로 선수들을 호명하여 힘겨루기를 시켜놓고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걷거나 각국의 방송사로부터 중계권료를 걷는 올림픽 조직들, 

②지불한 중계료를 훨씬 능가하는 광고료를 챙기는 방송사들,

 ③국가대표와 자사의 상품을 동일시하는 광고를 통해 국민적 소비를 이끌어내는 기업들이 협연하는 올림픽에서 국가는 제법 잘 팔리는 상품일 뿐이다. 


올림픽에서 국가가 상품이라면 국가대표는 살아 있는 원자재인 노동자고 국민은 국기로 포장된 문화산업의 소비자다. 그러니 더 큰 임금을 주는 나라로 국적을 바꿔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는 고급 이주노동자며, 밤잠을 설치며 애국심을 자각하는 국민은 소비중독자이다. 그 때문에 국가라는 상품 생산자인 거대자본이 ‘만약 내가 이겨서 일본의 국가가 울릴 것을 알았다면 올림픽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손기정님의 탄식을 상상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고도의 광고 전략이다. 


그런데도 이주노동자가 몇몇 생산 라인을 접수한 올림픽이 다문화사회로의 지구적 전환의 증거인 양 떠드는 학자들이 있다. 서로 다른 종족이 하나의 국기를 단 선수단은 그만큼 다양한 이주노동자를 끌어 모을 수 있는 제국의 역사와 초국적 자본을 가진 국가의 이야기다. 미국, 영국, 프랑스 대표선수에 흑인이 많은 것은 그들의 어두운 역사를 반영하면서 그들의 문화산업이 제3세계 선수들을 흡수할 만큼 막강하다는 증표다.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이런 방식의 문화적 다양성이란 상품의 다양화일 뿐이며, 결국 더 큰 자본을 가진 강자만이 살아남는 문화적 토양을 은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올림픽이야말로 약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축제라고 주장한다. 사례는 풍부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올림픽 개막식은 사회적 소외집단의 아픔과 고통의 역사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로 넘쳐난다. 더구나 가난과 무시를 극복하고 인류를 대표하는 선수로 등극한 영웅들의 감동적 성공일기에서 올림픽은 꿈을 실현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반복적 서사는 지금의 돈 중심 체제에서도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으며, 그 때문에 현 체제는 정당하다는 신화를 은밀하게 유포한다. 이런 방식으로 올림픽은 부정적 현실을 긍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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