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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가을 이명박 서울시장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정책을 하나 발표했다. 한반도 대운하 구상이다. 남한에 2099㎞, 북한에 1035㎞의 물길을 이어 한반도 전역에 3134㎞에 이르는 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553㎞의 경부운하를 시발로 한반도를 운하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한반도 대운하는 17대 대통령선거에서도 단연 핫이슈였다. 광고만 보면 대운하는 세상을 바꿀 획기적 사업처럼 보인다. 당시 한반도 대운하 동영상 광고를 보자.

“한반도 동서남북에 3000㎞ 운하를 건설해 분열된 국론을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하천정비로 환경이 좋아지며… 홍수대비는 물론 가뭄해소에 도움을 줄 것이다… 건설비용 15조원은 민자유치를 통해 국민의 부담이 거의 없도록 하고… 골재판매로 공사비 60%를 충당할 것이다… 파급효과로 30만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화물운송비가 3분의 1로 줄어들며… 수질이 개선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켜 국토균형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 5월 25일 (출처: 경향신문DB)

이 전 대통령이 2007년 대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뒤 사업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 ‘글로벌 코리아’ 기반조성 핵심과제로 한반도 대운하사업을 선정했다. 학계·종교계·시민단체에서 운하백지화운동이 거셌지만, 국토해양부 장관은 대운하 비판에 대한 정면돌파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로 국민저항이 하늘을 찌르자 뜻을 굽혀야 했다. 2008년 6월19일 이 전 대통령은 “촛불정국이 준 교훈은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의 뜻을 받들라는 것”이라며 “국민이 반대하면 한반도 대운하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명박 정부는 그해 말 한반도 대운하사업을 대체할 새로운 사업을 내놓았다. 한국형 녹색뉴딜이라며 4대강 정비사업을 발표했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4대강을 준설하고 보를 설치해 하천의 생태계를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4대강 사업이 홍수예방, 수질개선, 일자리 창출 등 1석7조의 친환경 경제사업”이라고 찬양했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대업의 시작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를 보고 대운하사업의 완전포기라고 믿은 것은 너무 순진했다. 4대강 정비사업으로 화장했을 뿐 대운하사업은 물밑에서 계속 추진되었다. 교통과 물류, 관광의 목적에서 출발했던 대운하가 비판에 직면하자 일단 홍수예방, 수질개선, 물 확보라는 ‘치수개념’을 내걸고 직진 대신 선회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1·2단계의 단계적인 추진에 나섰다. 한반도 대운하 가운데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상징적인 구간인 경부운하의 조령 50㎞ 구간만 미룬 것이지 나머지는 그대로 ‘고(go)’였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을 정비해 커다란 물그릇을 만들면 가뭄과 홍수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4대강의 정비는 대부분 마무리된 상태였다. 정비대상은 강의 지류나 상류·소하천이지만 재차 ‘4대강 정비를 한다’며 삽을 든 것이다. 가뭄이나 홍수피해지역은 대부분 지류나 상류 유역이다. 헛발질했다. 그 결과 ‘괴물보’와 ‘녹조라떼’가 탄생했다. 누가 봐도 댐과 같은 형태에다 과도하게 크게 설계된 ‘가분수형’ 갑문은 하시라도 운하로 탈바꿈하기에 적합하게 고안된 것이었다. 그리고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한다고 했던 강은 보로 인해 고인 물이 썩으면서 ‘녹조라떼’가 됐다.

또 노다지라던 4대강의 골재는 돈 먹는 하마가 됐다. 골재판매 수입은 목표액에 턱없이 모자랐다. 오히려 수천억원의 유지비만 들었고 흉물로 지역민원을 일으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운하사업은 국고지원을 받는 안전한 국가재정사업으로 탈바꿈했다. 22조원이 넘는 예산의 상당액이 민간건설업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무엇을 위한 사업이었나.

이 전 대통령은 경부운하가 경부고속도로와 같은 국가 인프라가 되기를 꿈꿨는지 모른다. 그는 4대강 사업을 녹색뉴딜이라며 친환경적인 사업으로 포장했으나 한물간 삽질 경제일 뿐이었다. 도로 항만과 같은 인프라투자로 경제를 다시 살리겠다는 시대착오적인 비전은 매몰비용만 늘렸다.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활성화는 신기루였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을 농단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국토를 농단했다.

국가가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할 시간, 재원, 노력을 낭비했고, 미래는 준비 안된 상태로 남아 있다. 참담한 결과를 드러낸 대운하사업은 후대에 부담만 남겼다. 정부가 무슨 짓을 했는지 궁금하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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