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노키아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핀란드의 대표 기업이었다. 한때는 ‘혁신의 아이콘’ ‘핀란드의 자존심’ 등으로 불렸다. ‘노키아 1011’ ‘노키아 2110’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10여년간 세계 휴대전화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한 노키아의 몰락은 한순간이었다.  미국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가 2007년 개발한 아이폰은 휴대전화 시장 판도를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꿔놨다. 하지만 노키아는 변화의 흐름에 둔감했다. 뒤늦게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고 스마트폰을 내놓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노키아는 최악의 경영난으로 2012년 본사 사옥까지 매각했다.

노키아는 날개 없이 추락하면서도 상생(相生)의 길을 택했다. 핀란드 기술청과 함께 ‘테크노폴리스 이노베이션 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인력과 특허기술을 중소기업에 이전한 것이다. 20여개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탄생했고,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핀란드 시민들이 노키아를 여전히 ‘국민 기업’으로 여기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프랑스와 독일은 대형 유통업체와 중소상인의 상생을 도모하고 있다. 프랑스는 1996년 라파랭법을 제정해 대형 유통업체가 연면적 300㎡ 이상의 매장을 내려면 중소상인 대표가 참여하는 시 지역위원회의 승인을 얻도록 했다. 독일도 대형 마트의 골목상권 침탈을 막기 위해 ‘10% 가이드라인’ 정책을 펴고 있다. 대형 마트의 도심권 진출로 소상공인의 매출이 1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면 입점을 제한한다.

상생은 말뜻 그대로 ‘서로 북돋우며 함께 사는’ 것이다. 비올 때 남의 우산을 뺏지 않고, 우산이 없으면 함께 비를 맞는 게 상생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선 상생의 미덕이 사라진 지 오래다. 약자의 눈물을 성공의 디딤돌로 삼는 강자의 ‘갑질’이 만연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재벌의 ‘약탈’이 일상화돼 있다. 지난 4월 노동자 6명이 서울 광화문 사거리 광고탑 위에 올라 물과 소금만으로 버티며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각기 다른 사업장에서 노조탄압과 직장폐쇄, 정리해고에 맞서 장기투쟁을 벌여온 노동자들이었다. 27일간 ‘하늘 감옥’에 갇혀 상생을 요구했던 노동자들은 “악질적 사용자가 용인되고, 노조 할 권리가 보호되지 못하면 삶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상생을 외면하는 것은 대기업 노조도 마찬가지다. 기아차 노조는 지난 4월 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했다. 9년간 한 우산 아래 있던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노조 밖으로 내몬 것이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지회는 2·3차 사내 하청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했다. 상대적 약자에게 손을 내미는 ‘연대와 상생’의 가치를 실현한 것이다. 최근 몇 년 새 서울 북촌과 서촌, 망리단길 등에서 진행된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은 저소득층 원주민에 대한 가진 자들의 횡포다. 강남 아파트 주민들이 월 2만원의 추가부담을 아끼려 경비원을 해고하고, 유명 디자이너가 직원 월급 50만원을 체불하는 게 한국사회의 민낯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대통령 한 명 바뀌었는데 세상이 달라진 것 같다”는 얘기들이 많다. 보수세력은 문 대통령의 탈권위·격식파괴·소탈한 행보 등을 ‘스타일 정치’ 또는 ‘쇼(Show)통’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사람 중심의 상생 경제’를 실현하겠다고 했다. 시장 약자와 을(乙)들의 절규를 외면하지 않고, 상생의 가치를 중시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재벌의 일감몰아주기,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 가맹점·대리점에 대한 본사의 갑질을 근절하지 않고서는 ‘사람 중심의 상생 경제’를 실현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6·10항쟁 30주년에 화두로 제시한 경제민주주의는 ‘양보와 타협, 연대와 배려’라는 상생의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사에서 “대기업의 경제력 오·남용을 막고, 을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9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며 노동자와 서민에게 일방적인 희생과 양보를 강요했다. 사자와 소를 한 울타리에 몰아놓고 경쟁하며 살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생태계를 구분하고, 상생을 위한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정부가 할 일이다. 시장 강자의 약탈과 횡포를 방조하는 정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처럼 “경제적 살인의 주범”일 수 있다. 각자도생(各自圖生)에서 상생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하지만 그 길을 가다보면 들린다. “같이 좀 잘 살자”는 사회적 약자와 을들의 외침이 얼마나 크고 절박한지….

박구재 논설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