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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여적]박근혜와 유진룡

opinionX 2017. 6. 14. 11:14

대통령과 그가 발탁했던 장관이 수용자 번호를 가슴에 단 피고인과 그의 죄상을 밝히기 위한 증인 신분으로 법정에서 만났다. 얄궂은 운명이다. 13일 서울중앙지법 법원종합청사 417호 형사대법정.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출석했다. 유 전 장관은 박 전 대통령 면전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과정에서 발생한 문체부 공무원 찍어내기 인사에 관해 증언했다. 박 전 대통령이 노태강 전 체육국장을 콕 집어서 ‘나쁜 사람’이라고 한 것에 대해 유 전 장관은 “노태강은 문체부에서 상위자나 하위자 다면평가 결과 최상의 성적을 받은 사람”이라고 반박했다. 박 전 대통령은 평소와 달리 자세를 바르게 하고 목을 꼿꼿이 유지했다. 그가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이 13일 오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집권 초기 박 전 대통령의 유 전 장관 임명은 신선했다. 유 전 장관은 참여정부 시절 양정철 청와대 홍보비서관의 인사청탁을 거절해 차관직에서 경질됐다는 얘기가 돌면서 세간에 이름 석 자가 각인됐다. 양 비서관으로부터 “배 째드리지요” 등의 말을 들은 것으로 알려진 그는 옳은 것은 옳고 틀린 것은 틀리다고 말하는 ‘영혼 있는 관료’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유 전 장관 임명으로 정권의 이미지 제고에만 신경 썼을 뿐 정작 중요한 그의 반골 기질은 수용하지 않았다. 2014년 7월 박 전 대통령은 정성근 문체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위증 논란 등으로 낙마해 후임자가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유 전 장관을 전격적으로 경질했다. 두 차례에 걸쳐 유 전 장관이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건을 항의한 것 등이 원인이었다. 유 전 장관은 세월호 참사 이후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모든 국무위원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돌직구를 날려 박 전 대통령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돌고 도는 게 세상 이치인 모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이 찍어냈던 노태강 전 국장을 최근 문체부 2차관에 임명했다. 공무원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해주고 박근혜 정부의 과오를 비판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여기까지는 문재인 정부가 전임 정부와 닮은꼴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달라야 한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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