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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교육

[경향의 눈]생각 의자

opinionX 2015. 1. 26. 21:00

인천의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파장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워낙 충격적이었다. 네 살배기가 주먹에 맞아 공중으로 붕 떴다가 방바닥에 나자빠지는 장면을 보면서 다들 가슴을 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TV는 같은 장면을 계속 방영해 사회적 분노를 키웠다. 이로써 이 사건은 아동학대 사건의 악질적 사례로 자리 잡았다. 학대 교사는 곤충처럼 채집돼 두고두고 소개될 ‘나쁜 표본’이 되었다.

이번 어린이집 사건도 강자에 의한 ‘갑질’의 형태다. 교사는 권위와 힘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네 살배기를 학대했다. 우월한 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한 것이다. 그는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진 듯하다. 그런데 대중도 분노 조절에 실패했다. 교사 신상이 털리고 사진과 카카오톡, 일부 가족 이름까지 공개됐다. 사회적 분노가 근본적 해결책 마련이 아니라 분풀이 동력으로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분노가 개인에게 집중되면 사건의 구조와 본질은 부각되지 못한다. ‘땅콩 회항 사건’이나 ‘백화점 모녀 사건’에서도 대중의 공분이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치환되면서 정작 근본적 문제점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러니 유사 사건이 발생하고 분노가 폭발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학대 교사는 인터넷에 공개된 블로그에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나도 순수한 마음을 갖고 싶다”고 썼다. 블로그 닉네임은 ‘사랑스러운 그녀’였다. 이를 두고 “양의 탈을 쓴 늑대” 등 온갖 악담이 쏟아졌다. 무지막지한 네 살배기 학대와, 순수해지고 싶다는 글이 똑같이 31살 교사 한 사람에 의해 생산된 것임을 놓쳐서는 안된다. 개인의 문제를 따질 양이면 이런 양면성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평가해야 공평하다. 이제 분노의 대열에서 빠져나와 차분히 생각할 때가 되었다.

민간 어린이집 교사의 현실은 열악하다는 말로는 모자란다. 그들은 하루 평균 10시간 일하고 월 120만원을 받는다. 올 최저임금 월 116만원 수준이다. 꼬박 10시간 동안 자신을 챙기지 못하는 아이 20여명을 혼자서 가르치고 밥 먹이고 씻기고 낮잠 재우고 용변 관리를 해야 하는 중노동 대가로는 너무 적다. 이것만이 아니다. 교사 5명 중 4명은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연월차 수당, 초과근무수당, 상여금이 아예 없다. 저임금·장시간·고강도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교사들에게 어떻게 양질의 보육서비스를 주문할 수 있겠는가.

어린이집은 부조화의 공간이다. 사고라도 날까봐 가슴 졸이며 아이를 잘 돌봐주기 바라는 학부모의 높은 기대치와, 진정성을 갖고 아이를 대하기 힘든 교사들의 현실이 부딪치는 곳이다. 유아 교육 측면에서도 현실과 이상이 충돌한다. 미국 심리학자 게젤은 유아의 두뇌는 6세 전에 거의 성숙단계에 이르고 정신지능과 성격도 이때 급속도로 형성되기 때문에 유아 교육은 일생의 어느 시기보다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또 유아 교육에서는 발달단계와 행동특성이 각자 달라 상황별 대처가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민간 어린이집에서 이런 세심한 관리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형편이다. 아동 학대를 예방하고 제대로 된 유아 교육을 하기 위한 우선적이고 근본적인 조치는 교사들의 처우 개선이다. 아이를 사랑으로 대하는 것도 학대하는 것도 다 교사가 하는 일이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면 학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를 돌볼 것이다.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아동 학대사건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 것은 바로 교사들의 급여가 높고 노동 환경이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이 아동 학대 근절을 위한 또 다른 대책으로 꼽힌다. 교사 자질 검증이나 처벌 강화는 그 다음 문제다.

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임원들이 아동학대예방대책 관련 기자회견 시작에 앞서 고개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럼에도 정부는 갈팡질팡하고 있다. 재탕, 삼탕 대책을 남발하더니 지난 24일엔 전일제 어린이집은 맞벌이 부부에게만 개방하고 전업주부는 가정 양육을 유도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가 강한 반발을 샀다. 여성이 가사·육아 노동을 해야 한다는 성차별적인 발상에서 나온 정책인 데다 비자발적 전업주부들의 입장을 감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동 학대 예방 효과가 낮다는 점이 문제다. 이것도 데자뷰다.

‘타임아웃’이란 유아교육 방식이 있다. 문제 행동을 한 아동을 시간적·공간적으로 격리시켜 스스로 성찰하고 대안을 모색하도록 하는 훈육방법이다. 어린이집의 ‘생각 의자’가 대표적이다. “아직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대통령, 정치인, 장차관들을 생각 의자에 앉히고 싶다.” 한 민간 어린이집 교사의 발언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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