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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갈림길 위에 서 있다. 그동안 걸어왔던 길과 새로운 길 사이다. 새로운 길이 여는 세상은 ‘유러피안 드림’이라고 하는 유럽인들이 지향하는 미래다.

우리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길들여져 있다. 누구든지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꿈을 좇는 시스템이다. 신세계를 찾아 유럽을 떠났던 이민자들은 대서양을 건너며 ‘신분제’라는 멍에를 바다에 버렸다. 그리고 ‘기회’ ‘평등’ ‘경쟁’ ‘자수성가’ ‘돈’이라는 새로운 마법이 그들의 신앙이 되었다. 미국은 대국으로 성장했고 빈부 격차도 커졌다. 그런데 꿈이 깨진 소외 계층마저도 기회의 땅이라고 믿는 사회가 현재의 미국이다. 그들은 돈이 신분을 대신한다고 믿는 사회에서 산다. 언제라도 그 문을 열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 경제적인 성공은 최고의 가치로 여겨진다. 대부분 개인재산의 축적으로 종결되는 ‘미국식 축복’을 꿈꾸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이다.

그들은 유럽을 병들고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유럽은 놀고먹으며, 경쟁을 하지 않고, 노조의 보호에 안주하며, 연금만 타먹으려고 하는 사회다. 미국인들은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은 수입을 얻으려고 하는 반면 유럽인들은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은 혜택을 국가로부터 받으려고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그들은 1970년대 이후 유럽이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부를 축적할 기회를 잃었다고 말한다. 생산성과 개혁은 경쟁에서 나오지만 경쟁을 회피하고, 규제를 만들어 현실에 안주한다는 것이다. 노조는 노동 시간, 휴가 기간, 초과 근무, 퇴직 연령 등에 대한 규제를 강제하면서 새로운 일자리에 청년층 등 신규진입자를 막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펼친 팽창 일변도의 복지프로그램은 그들에게 ‘정부는 복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믿음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든 문제의 해결은 정부의 지출확대이지만 이는 한계가 있고 연금시스템은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놀고먹는 유럽인이 부지런한 미국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고 유럽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비판은 미국이 이기적이며 승자독식의 ‘정글 자본주의’ 체제라는 평가에서 출발한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간 이주민들은 경쟁을 신봉했지만, 남은 유럽인들은 공존을 택했다. 유럽인들에게 미국시스템은 개인의 물질적 성장에만 크게 의존하고 인간 전체의 보편적 복지를 등한시하는 제도다. 또한 다양성과 서로 간의 종속성이 확대되는 세계와 맞지 않는 제도다. 유럽사회는 세계에 대한 열린 마인드와 관용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꿈을 키웠다. 유러피안 드림이다. 그들에게 개척자 정신으로 무장된 낡은 아메리칸 드림은 유효기간이 지났다. <유러피안 드림>을 쓴 제레미 리프킨은 유러피안 드림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개인의 자율보다는 공동체의 관계를, 문화적 동화보다는 다양성을, 부의 축적보다는 삶의 질을, 제한된 물질적 성장보다는 지속적인 발전을, 일만 하기보다는 놀면서 발전하는 것을, 일방적인 권력행사보다는 세계적 협력을 우선시하는 사회다.’ 유럽은 새 시대로 나가는 길목에서 미국에게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아메리칸 드림이 과거만 바라보며 마비되는 동안 새로운 유러피안 드림이 탄생한 것이다.

미국인들은 대체로 가난한 사람은 스스로 잘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가난에 대해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사회가 가지는 인식의 차이가 다양한 논란의 출발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걸고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 성장이란 가계의 소득을 늘려 소비를 진작시키고 이것을 통해 생산을 유발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소득을 늘리기 위해 최저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나섰다. 정부의 재분배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아동수당, 기초연금, 청년 구직촉진수당, 저소득층 기초생활보장 등도 신설·확대됐다. 경쟁을 넘어 인간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덜컹거리고 있다.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첫 수석·보좌관회의는 최저임금인상에 따른 일자리 안정대책이었다. 문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최저임금 인상은 극심한 소득불평등과 저임금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정책이다. 하지만 돌출변수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사회로 나가는 첫발을 내디뎠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는 유럽인들도 수백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꽃피운 것이다. 지금까지 이기적인 유전자로 역경을 헤쳐나왔다면 이제는 이타적 유전자를 이식시켜야 하는 시대가 됐다. 시장경제는 사회적 책임을 수반할 때 미래가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꽃길이 아님은 분명하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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