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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가 되살아나고 있다. 회복은 물론 팽창을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 경제는 추세적으로 회복하고 있으며 완만하게 팽창할 것”이라는 게 일본 당국자의 말이다. 일본 경제는 3년여 만에 4개 분기 연속 성장세를 기록했다. 성장률도 잠재성장률을 웃돌고 있다. 기업에서는 구인난을 겪고 있다. 도심지의 부동산 가격도 오르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효과라고 한다. 일본 경제가 되살아나는 모습을 접하는 심정은 복잡하다. 한국 경제가 일본의 길을 따라왔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불황을 겪었다. 일본 경제가 늪에 빠진 것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다. 미·일 간 합의로 미 달러화에 대한 엔화가치가 폭등했다. 일본 정부는 환율 하락(가치 상승)에 따른 경기위축을 상쇄하기 위해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자산버블이 발생해 주식과 부동산 시장은 폭등했다. 1990년대 일본 정부는 버블이 사회문제로 번진 뒤에야 비로소 금리 인상과 부동산 관련 대출억제에 나섰다. 버블 붕괴로 버블기에 형성된 과잉투자와 과잉고용은 떨어내야 할 짐이 됐다. 이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소비가 줄고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에 빠졌다. 일본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을 풀었다. 그러나 비효율적인 곳에 집행되면서 재정 악화만 초래했다. 2001년 일본 경제는 회복되는 듯했으나 금융위기로 다시 늪에 빠졌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FP연합뉴스
2012년 아베 신조 총리는 부임한 뒤 3가지 경제정책을 내세웠다. 첫 번째가 대담한 금융 완화, 두 번째가 기동적인 재정정책, 세 번째가 민간 투자를 자극하는 성장 전략이다. 아베 총리는 ‘화살 한 개는 쉽게 부러지지만 세 개를 한꺼번에 부러뜨리는 것은 어렵다’는 일본 무사의 일화를 말하며 세 개의 정책을 한꺼번에 추진해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다. 지금 일본 경제가 차츰 살아나고 있다. 일본의 장기 침체는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의 오판, 기업의 구조조정 실패, 리더십의 부족으로 요약된다.
한국은 일본이 갔던 길을 쫓아갔다. 우리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보면서 무엇을 배웠는가. 우리는 지난 10년 가까이를 ‘삽질경제’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토건정책과 ‘창조경제’라는 모호한 구호 아래 흘려보냈다. 삽질경제로 22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였으나 4대강은 ‘녹조라떼’라 불리는 썩은 강이 됐다. 신성장동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반도 대운하의 ‘짝퉁판’을 만들어 앞으로도 관리비만 수백억원씩 투입해야 할 처지다. 또 창조경제라는 담당공무원조차 제대로 모르는 구호에 맞춰 춤을 췄다. 미래의 비전을 만들고 앞으로 나가야 할 때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리려 했던 것이다.
구조조정도 미봉책에 그쳤다. 구조조정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면 일시적인 고통이 적을지라도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혁신이 필요한 시점에 개량형 전략으로 ‘참고 견딘다’는 식의 비용절감 대책은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 같은 일본의 실패가 그대로 우리에게 반복되고 있다. 구조조정이 길어지고 고용은 줄어드는 반면 비정규직은 증가하고 있다. 소비 부진과 경제성장 부진은 불 보듯 하다.
성장을 위해 내놓은 부동산 부양 카드는 가계부채만 천문학적으로 늘렸다. 저금리에 부동산 부양으로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했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현재 1565조8100억원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178.9%까지 늘었다. 일본 경제가 플라자합의 이후 불황을 겪었다면 한국은 가계부채로 늪에 빠질 공산이 크다.
리더십도 부재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은 무역장벽을 쌓고 한·미 간 자유무역협정도 개정할 기세다. 환율절상 압박도 거세다. 우리의 수출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 변수는 더욱 불안하다.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빌미로 갖가지 트집을 잡고 있다. 앞으로 한국 경제가 입을 손실은 9조원에 달하며 경제성장률을 0.5%포인트 떨어뜨릴 수준이라는 전망도 있다. 사드로 인한 중국과의 갈등은 장기간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컨트롤타워는 비어 있다.
선거를 앞두고 있다. 구체적인 예산 확보 방안도 마련되지 않은 퍼주기 공약이 난무한다. ‘당선되면 그만이다’는 식의 포퓰리즘이 더욱 창궐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가 안 좋아도 ‘20년만 견디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대규모의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다. 탄탄한 자본과 기초기술력도 갖추고 있다. 한국은 일본처럼 장기 불황을 견딜 체력이 되지 않는다. ‘버티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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