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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누리과정은 이른바 ‘밀어내기’ 정책이다. 중앙 정부 정책이지만 2조1000억원의 재정부담은 지방교육청에 떠넘겼다. 악덕 대기업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중소기업을 상대로 갑질하는 것을 빼닮았다. 교육청으로서는 그렇잖아도 옹색한 형편에 대규모 예산을 추가로 부담하게 됐으니 반발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이 누리과정 도입 후 5년째 되풀이되는 ‘보육대란 부조리극’의 내막이다.
누리과정을 떠맡아 출혈성 예산을 편성하다보니 교육청들의 재정은 벼랑에 몰려 있다. 총부채는 17조원을 넘어섰다. 경기도는 예산 대비 부채비율이 48%를 넘었다. 이 비율이 40%를 넘으면 ‘위기 지자체’로 규정돼 중앙 정부가 예산편성권을 박탈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불합리한 구도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
누리과정은 18대 대선을 염두에 둔 보수정권의 대표 공약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대선 10대 공약으로 홍보했다. 이처럼 누리과정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지만 책임감은 없다는 사실이 이번에 확인됐다. 보육대란이 가시화하면서 학부모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을 알면서도 일절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리과정의 ‘생모’인데도 파탄나든 말든 상관없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보육현장의 아우성을 못 견딘 것은 오히려 지방이었다. 서울 등 일부 교육청이 급한 대로 1~2개월치라도 예산을 편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니 솔로몬 왕이 왔다가 울고 갈 것이란 썰렁한 농담이 돈다. 모성본능을 자극해 진실을 이끌어낸 재판 방식이 막 나가는 중앙 정부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아이들을 볼모로 잡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정작 아이들을 볼모로 잡은 것이 누구인지 분별하기 어렵지 않다. 사실 교육청이 중앙 정부와 대결한다는 것은 애초 승산이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지금 관료조직은 정권의 도구화 경향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이준식 장관이 유치원·어린이집 원장과 교사, 학부모들과 누리과정 예산 편성 간담회를 하고 있다._경향DB
중앙 정부는 밀어내기 외에도 다양한 압박책을 구사했다. 25일만 해도 박 대통령은 예산을 짠 교육청에만 예비비를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시행령 개정도 주요 수단이다. 법률을 개정하는 것이 맞지만 야당 반대가 예상되자 정부 마음대로 고칠 수 있는 시행령을 선택한 것이다. 지방교육청에 부담을 떠넘긴 것이 법률적 근거가 미흡하다고 지적하자 시행령을 개정해 근거를 마련한 뒤 반발하는 교육청을 “법률 위반”이라며 몰아붙이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교육청은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시행령이 상위법인 법률을 거스른 것은 위헌이라고 지적해보지만 메아리는 없다.
갑질의 결정판은 억지성 홍보다. 예를 들어보자. “누리과정은 지방재정교부금으로 쭉 지원했다. 작년까지 잘해오던 교육감들이 사실을 왜곡하며 거부하고 있다”(박 대통령 2016년 신년 기자간담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매년 교부금은 물론 국고와 지방비도 투입됐기 때문이다. “무조건 정부 탓을 하는 교육감들의 행동은 무책임하다”(박 대통령 2016년 1월25일 수석비서관회의). 박 대통령은 진정 무책임한 사람이 누구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은 “보육사업은 중앙 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던 공언(2013년 시·도지사 간담회)을 잊은 모양이다.
중앙 정부는 누리과정 도입 당시 교부금이 매년 늘어 재원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봤지만 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실제 지난해 교부금은 39조원으로 전망치 49조원에 크게 부족했다. 교육감들은 교부금 인상을 요구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교부금은 중앙 정부에서 주는 것이니 결국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라고 낯간지러운 주장(2016년 1월5일 최경환 부총리 담화)을 하고 있다. 중앙 정부의 신뢰와 권위에 먹칠하는 언행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중앙 정부가 잠시나마 ‘본령’을 찾은 적도 있다. 교육부가 2014년 정부 예산 편성 때 누리과정을 국고로 편성한 것이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에 의해 전액 삭감당했다. 대통령의 의중도 모른 채 대선공약을 지키려다 큰 코 다친 셈이다. 이후 교육부는 한동안 ‘착한 정부’로 불렸다.
누리과정 예산 2조여원은 큰돈이지만 중앙 정부가 다른 대선공약에 쏟아붓는 예산에 비하면 약과다. 그럼에도 중앙 정부가 한사코 여기에만 집착하다보니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방교육을 흔들고 나아가 ‘눈엣가시’인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중앙 정부는 이것이 근거 없는 오해임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 누리과정은 영·유아 무상보육과 여성의 사회진출 기회확대, 저출산 대책과 연계되는 중요 국책 사업이다. 다수 여론도 중앙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중앙 정부는 더 이상 억지를 부릴 이유가 없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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