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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선 논설위원
그제 서울의 덕수궁 앞. 사람들이 있었다. 남녀노소. 어떤 집단이라 특정짓기 어려웠다. 까만 양복에 검은 넥타이의 상복에서 영문이 새겨진 검은 티셔츠까지 복장도 제각각인 익명의, 무정형의 집단이었다. 추모 행렬은 덕수궁 돌담길을, 서울시의회 앞길을 따라 두 갈래로 흘렀다.
그들은 질서정연했고, 침묵했다. 무엇이 저들을 저 뙤약볕 아래 서 있게 하는지 궁금했다.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즐겁지도 않은데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듯한 그들 마음속에는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을까. 애도와 분노, 울분, 안쓰러움, 동정, 연민의 복합체이되 그 이상의 무엇이 깔려 있는 것 같았다. 이명박 정부와 세상에 대해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듯했다.
휴일 한가운데를 토막내 가족까지 데리고 나온 이들도 단순한 추모나 교육 차원이 아니라 무엇인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끓고, 그것을 표현할 마당을 찾은 듯한 표정도 엿보였다. 이 정권은 집단 시위나 집회라면 두려워하지만 꼭 광장이 있고, 식순이 있으며, 열변을 토해야만 집회인가. ‘소리없는 아우성’, 덕수궁 앞은 저마다의 1인 시위 현장이었다.
추모객들 저마다의 1인 시위
그랬다. 추모객들은 분향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애도했다. 그들 가슴의 응어리도 함께 토해내는 듯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을 할 수 있나, 결혼해도 애를 낳을 수 있나 묻고 있었다. 사회 양극화로 인한 가난한 자들의 설움을, 점수 기계로 전락한 청소년들의 현실을, 끝없는 민주주의의 퇴락을, 아픈 현실보다 더 저리는 희망의 실종을 토해내는 것 같았다.
왜 왔느냐고 묻기 민망했다. 다 아는 얘기 아닌가. 곳곳에 추모객들이 붙여놓은 쪽지들은 말하고 있었다. ‘가난한 자들의 친구, 서민의 수호자’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겪어야 할까요’ ‘우리는 목격자이자 방관자였다’ ‘이제 우리 참지 말아요’ ‘마음의 촛불은 살아 있다’ 등등.
그러나 그뿐이다. 그러한 절규는 분향소를 에워싼 경찰 버스에 막힌 채 그 언저리만 맴돌았다. 지난해 촛불시위 때 컨테이너로 광화문통을 가로막은 ‘명박산성’이 떠올랐다. 눈감고 귀막은 정권에 이들의 절규는 소음에 불과하리라.
봉하마을은 사뭇 달라 보인다. 투박하고 흥분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삭이지 않고 거칠었다. 화가 나 있었다. 정권도, 검찰도, 정치인도, 언론도 모두 분노의 대상이었다. 민주당도, 진보 언론도 과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내팽개쳐지는 바람에 다시 보내야 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계란 세례를, 김형오 국회의장은 물병 세례를 받았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빈소 입구 1.3㎞ 앞에서 돌아서야 했다. “누가 조문을 오든 마음의 길을 열어주십시오.” 장례위 측이 자제 촉구 방송을 했다. 하지만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노무현이 고난을 당할 때 부추기거나 모른 체하다가 사람이 죽고나서야 조문이랍시고 찾아오겠다니 하는 분노인 것 같았다.
살아있을 때는 사람답게 대우해달라는 바람을 외면하더니, 죽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어서야 망자 앞에 옷깃을 여미겠다는 뻔뻔함에 대한 항의 같았다. 기득권층이 노무현에 대한 과장된 멸시와 증오로 일관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노무현은 전직 대통령이면서 동지이자 형님이고 아저씨였다. 아니 자신인지도 몰랐다.
지지를 떠나 자신을 돌아보라
사람들은 스스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인간 노무현의 모습도 그럴 것이다. 덕수궁 앞에 줄 선, 봉하마을에 모여든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저마다의 노무현이 자리잡고 있을 터이다. 빈소를 찾으려다 박대당한 정치인들, ‘서거’가 아니라 ‘자살’이라고 주장한 어떤 극우 인사도 마찬가지리라.
그 조각 조각들을 모두 모아 맞추어보면 노무현이라는 ‘시대의 퍼즐’이 탄생할 법하다. 커다란 퍼즐이 완성되면 그 안에는 노무현의 성공과 실패, 그와 함께했던 우리 시대의 성공과 실패가 오롯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노무현을 읽음으로써 나를 읽고, 우리 시대를 읽어야 한다. 잃어버린 가치를 되새기고 찾아야 할 지향점을 다시 짚어내야 한다. 고인을 지지했든 아니든, 고인의 안식을 비는 이들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의무다.
그제 서울의 덕수궁 앞. 사람들이 있었다. 남녀노소. 어떤 집단이라 특정짓기 어려웠다. 까만 양복에 검은 넥타이의 상복에서 영문이 새겨진 검은 티셔츠까지 복장도 제각각인 익명의, 무정형의 집단이었다. 추모 행렬은 덕수궁 돌담길을, 서울시의회 앞길을 따라 두 갈래로 흘렀다.
그들은 질서정연했고, 침묵했다. 무엇이 저들을 저 뙤약볕 아래 서 있게 하는지 궁금했다.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즐겁지도 않은데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듯한 그들 마음속에는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을까. 애도와 분노, 울분, 안쓰러움, 동정, 연민의 복합체이되 그 이상의 무엇이 깔려 있는 것 같았다. 이명박 정부와 세상에 대해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듯했다.
휴일 한가운데를 토막내 가족까지 데리고 나온 이들도 단순한 추모나 교육 차원이 아니라 무엇인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끓고, 그것을 표현할 마당을 찾은 듯한 표정도 엿보였다. 이 정권은 집단 시위나 집회라면 두려워하지만 꼭 광장이 있고, 식순이 있으며, 열변을 토해야만 집회인가. ‘소리없는 아우성’, 덕수궁 앞은 저마다의 1인 시위 현장이었다.
추모객들 저마다의 1인 시위
그랬다. 추모객들은 분향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애도했다. 그들 가슴의 응어리도 함께 토해내는 듯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을 할 수 있나, 결혼해도 애를 낳을 수 있나 묻고 있었다. 사회 양극화로 인한 가난한 자들의 설움을, 점수 기계로 전락한 청소년들의 현실을, 끝없는 민주주의의 퇴락을, 아픈 현실보다 더 저리는 희망의 실종을 토해내는 것 같았다.
왜 왔느냐고 묻기 민망했다. 다 아는 얘기 아닌가. 곳곳에 추모객들이 붙여놓은 쪽지들은 말하고 있었다. ‘가난한 자들의 친구, 서민의 수호자’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겪어야 할까요’ ‘우리는 목격자이자 방관자였다’ ‘이제 우리 참지 말아요’ ‘마음의 촛불은 살아 있다’ 등등.
그러나 그뿐이다. 그러한 절규는 분향소를 에워싼 경찰 버스에 막힌 채 그 언저리만 맴돌았다. 지난해 촛불시위 때 컨테이너로 광화문통을 가로막은 ‘명박산성’이 떠올랐다. 눈감고 귀막은 정권에 이들의 절규는 소음에 불과하리라.
봉하마을은 사뭇 달라 보인다. 투박하고 흥분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삭이지 않고 거칠었다. 화가 나 있었다. 정권도, 검찰도, 정치인도, 언론도 모두 분노의 대상이었다. 민주당도, 진보 언론도 과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내팽개쳐지는 바람에 다시 보내야 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계란 세례를, 김형오 국회의장은 물병 세례를 받았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빈소 입구 1.3㎞ 앞에서 돌아서야 했다. “누가 조문을 오든 마음의 길을 열어주십시오.” 장례위 측이 자제 촉구 방송을 했다. 하지만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노무현이 고난을 당할 때 부추기거나 모른 체하다가 사람이 죽고나서야 조문이랍시고 찾아오겠다니 하는 분노인 것 같았다.
살아있을 때는 사람답게 대우해달라는 바람을 외면하더니, 죽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어서야 망자 앞에 옷깃을 여미겠다는 뻔뻔함에 대한 항의 같았다. 기득권층이 노무현에 대한 과장된 멸시와 증오로 일관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노무현은 전직 대통령이면서 동지이자 형님이고 아저씨였다. 아니 자신인지도 몰랐다.
지지를 떠나 자신을 돌아보라
사람들은 스스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인간 노무현의 모습도 그럴 것이다. 덕수궁 앞에 줄 선, 봉하마을에 모여든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저마다의 노무현이 자리잡고 있을 터이다. 빈소를 찾으려다 박대당한 정치인들, ‘서거’가 아니라 ‘자살’이라고 주장한 어떤 극우 인사도 마찬가지리라.
그 조각 조각들을 모두 모아 맞추어보면 노무현이라는 ‘시대의 퍼즐’이 탄생할 법하다. 커다란 퍼즐이 완성되면 그 안에는 노무현의 성공과 실패, 그와 함께했던 우리 시대의 성공과 실패가 오롯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노무현을 읽음으로써 나를 읽고, 우리 시대를 읽어야 한다. 잃어버린 가치를 되새기고 찾아야 할 지향점을 다시 짚어내야 한다. 고인을 지지했든 아니든, 고인의 안식을 비는 이들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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