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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임명했다. 현 정부 들어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14번째 고위직 인사다. 

현 정부에 더 이상 잘 어울릴 수 없는, ‘완벽한’ 인사다. 지난달 27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전 부처의 산업부화를 주문했다.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 관련 서비스 산업부라 봐야 하고, 국방부는 방위산업부, 국토교통부는 건설산업부,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림산업부,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산업부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산업 증진과 수출 촉진을 위해 뛴다는 자세”도 당부했다. 교육부에 대해선 이미 지난 6월 “교육부 스스로가 경제부처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던 터다. 각 부처의 존재이유를 배반할 수도 있는, 기막힌 인식이다. 이런 대통령의 장단에 별 고민 없이 박자를 맞춰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이주호 부총리다. 

이 부총리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일했던 경제학자다. 언론 인터뷰에선 스스로를 “시장경제주의에 철저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재임 당시, 교육에도 시장경쟁이 기본이 돼야 한다고 공언하며, 가능한 한 많은 정보 공개로 교육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들이 판단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원 평가, 일제고사,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며 점수 공개와 줄세우기를 일삼았고, 입학사정관제 확대,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 등은 예산과 페널티라는 당근과 채찍으로 단시간 내에 정해진 답을 향해 현장을 굴복시켰다. 

그러나 교육에선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잊었을지 모르지만 이주호 장관 시절 교육계 최대 이슈는 심각해져가는 학교폭력이었다. 모든 것이 점수와 평가로 재단되는 극도의 경쟁적 분위기에서, 학생들은 열패감과 고통의 수렁에 빠졌고 교육현장은 안으로 병들며 황폐해졌다.

세월호 참사 한 달 후 신설된 사회부총리는 비경제정책 분야인 교육·사회·문화를 총괄하는 자리다. 교육·문화체육·보건복지·고용노동·환경·여성가족부 등 경제적 효율보다는 일상의 복지가 중요한 분야들이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가 구분한 국가의 오른손(전통적 의미의 국가 기능)과 국가의 왼손(복지를 위한 예산 지출 기능) 중 왼손에 해당한다. 스스로 시장경제주의에 철저하다고 평가하는 사회부총리가, 국가의 오른손을 견제하며 복지를 챙기는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견제는커녕 폭주하는 오른손에 맞춰 박수를 쳐주지 않을까 불안하다. 

세월호에 이어, SPC 사태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며 “돈보다 생명” “이윤보다 안전”의 구호가 높아지고 있다. 민심은 ‘적극적인 공공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시대정신은 ‘복지와 공공성 강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경제위기에서) 재정정책은 취약계층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현 정부는 반대로 가고 있다.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지난 9월 현금 복지는 취약계층 위주로 하고, 서비스 복지는 민간 주도로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민간 주도 고도화”라 포장했지만, 사회서비스 민영화를 가속화해 안 그래도 한 줌뿐인 복지서비스의 공공성을 놔버리겠다는 의미다. 이 같은 방향은 약자 복지를 줄줄이 삭감한 내년도 예산안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주거 약자들에 절실한 공공임대 예산 5조600억원이 삭감됐고, 중소기업이 청년을 고용하면 주던 정부 지원금 1조원, 저소득층 에너지 바우처, 에너지 복지예산 492억원 등이 싹둑싹둑 잘렸다.

어느 때보다 공공의 자리가 절실한데, 현 정부는 기본부터 바닥을 뒤흔들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서비스산업발전법 입법, 다각적인 공공부문 민영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전 부처의 산업부화’라는 기치 아래 이 부총리와 윤석열 정부의 ‘협업’이 몰고 올 난장판이 무섭다.

지난달 28일 인사청문회에서 이주호 후보자는 “고교 다양화 정책이 서열화로 이어진 부작용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했지만 지금 교육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사회부총리의 영향력은 장관 때와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교육·노동·복지·환경 등의 잘못된 정책 방향은 ‘사회적 재난’을 몰고 올 텐데, “최선을 다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10년 후 한국 사회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비극적 역사가 반복될까 정말 우려스럽다.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song@kyunghyang.com>

 

 

연재 | 경향의 눈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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