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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방학동 은행나무



한 그루의 나무에 넓은 땅을 내어주는 게 불가능하리라 여겨지는 서울 도심에서 이례적으로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살아가는 600년 된 큰 은행나무가 있다.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다. 하늘 향해 25m까지 솟아오른 나무는 지름 20m가 넘는 원형 공간의 땅을 홀로 차지했다.

이 나무는 명성황후가 임오군란을 피해 여주로 떠날 때 치성을 올린 나무라고도 하고, 조선 후기 경복궁 증축 때 징목(徵木) 대상에 선정되어 베어내야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대원군에게 간청하여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대감 나무’라는 별명은 그래서 붙여졌다.

장대한 위용의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는 크고 아름다운 나무라는 점에서도 보존 가치가 높지만, 정작 더 특별한 건 사람들의 극진한 배려를 받으며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사람 중심의 번거로운 도시에서 살면서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는 죽음의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다. 나무 곁으로 빌라와 아파트를 비롯한 살림집 등의 건물이 들어선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서울에서 나무가 부닥쳐야 하는 별 도리 없는 운명이다. 나무에 그늘이 드리워지고, 바람길이 막히고, 나무 곁의 땅이 짓밟히며 나무의 생육에 장애가 생겼다.

그때 나무를 온전히 살려야 한다는 마을 사람들의 청이 이어졌고, 도봉구에서는 병든 가지를 제거하고, 썩어 텅 빈 구멍을 충전재로 메우는 등 외과수술을 네 차례나 했다. 그러나 나무의 생육은 나아지지 않았다.

나무를 살리기 위해 정밀진단을 한 도봉구는 결국 나무뿌리 부분 위쪽으로 들어선 빌라 2동의 12가구를 매입해 철거하고 나무 주변을 공원 구역으로 조성할 것을 결정했다. 모두 40여억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결정이었다. 마침내 나무는 건강을 회복하고 푸르게 살아났다.

도시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무를 지켜낸 사람들의 아름답고 소중한 이야기로 오래 남을 사례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연재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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