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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이후, 도저히 뉴스를 볼 수가 없어요.” 현장에서 정신없이 심폐소생을 하고 돌아온 20대 여성은 아직도 재난 한복판에서의 자신의 경험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멀리서 복잡한 현장에 접근조차 못했던 응급구조원의 목소리가 쟁쟁했다. “더 세게 하셔야 해요!”

그 여성은 마치 자신의 부실한 심폐소생술로 인해 결국 희생자의 죽음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 자신을 탓하기 시작했다. 미디어를 통해 당시 장면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대중이 모인 행사장에 다시는 못 갈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진다고 했다. 비극적인 사고의 현장에서 도움을 주려고 했던 이들이 겪는 이러한 정서적이고 인지적인 어려움을 ‘대리외상’(vicarious trauma)이라고 부른다. 여러 전문가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간에 재난 현장을 담은 영상을 무분별하게 올리지 말고, 반복하여 보지도 말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지금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트라우마 스트레스 반응’에 대한 일반인들의 가장 큰 오해가 하나 있다. 대리외상을 겪고 있는 여성의 현재의 심리적 반응은 결코 병리적인 현상이 아니다. 충격적인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은 마치 온몸에 전기충격을 받는 듯 쇼크를 경험한다. 이제 안전한 환경에 있지만 민감하게 반응하고, 현장을 연상케 하는 모든 경험으로부터 철저하게 자신을 방어한다. 이런 ‘쇼크 단계’는 대개 48시간 이상 지속된다. 온몸에 아직 전기가 흐르는 단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나는 동안에 사고는 수습된다 하더라도, 마음은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이후 두 번째 ‘반응 단계’라고 부르는 1주일 동안은 극도의 긴장상태가 되다가도 갑자기 멍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아마 국민 모두가 국민 애도주간 내내 이런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나는 이 역시 결코 병리적인 증상이라고 보지 않는다.

국민 애도주간이 끝나고 30일 정도가 되는 기간에는 정작 애도가 중요한 ‘회복 단계’가 시작된다. 이때 안전하게 자신의 숨겨진 감정을 모조리 털어놓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국민적인 애도가 시작되었던 시점이 바로 이때였다.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보건당국은 참사에서 살아 돌아온 단원고 학생들을 모두 한 곳에서 보호하고 의료인의 모니터링을 받도록 했다. 그들은 유명을 달리한 친구들의 합동 분향소에도 갈 수 없었다. 당시 한 방송국 추모 생방송에 출연한 나는 이들에게 반드시 분향소에서 친구의 이름을 부르면서 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다행히도 당국은 그 후 생존학생들도 분향소에서 친구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마주하면서 애도할 수 있도록 조처하였다.

애도의 상호적인 경험은 이러한 회복 단계에서 필수적이다. 자꾸 과거 참사 현장의 경험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침습적인 경험을 해도 괜찮다. 숨기지 않고 그 기억과 감정을 가감 없이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지속적인 애도가 진행되려면 준비된 전문가가 필요하다. 코로나19 때처럼 정부는 유가족은 물론 국민 누구나 지역의 심리상담 전문가를 만날 수 있도록 통합심리지원단을 꾸린 것도 이러한 애도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절차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과연 국민적인 애도가 사태해결에 도움이 되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접하곤 한다. 국민적 애도 기간을 두고 조기를 게양하는 것 자체가 유가족이나 국민적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의문이 담겨 있어 보였다. 물론 정부가 국민에게 요청하는 애도가 그저 검은 리본을 달고 형식적인 의식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애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안전감(safety)을 회복하는 일이다. 인간 누구나 불안과 긴장이 해소되고 안전감의 조건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세월호 혹은 이태원 참사 역시 희생자들이 놀러갔다가 죽음을 당한 것이니 국민적 추모의 대상이 아니라 여긴다면 이런 사회에서는 제대로 된 애도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사회적 참사에서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부모가 마음껏 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나는 세월호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경험하면서 이러한 생존 부모들이 원하는 유일한 소망은 생명과 안전이 중시되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일임을 목격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태원 참사는 이러한 부모들에게 또다시 과거 외상을 자극하는 비극일 수밖에 없다. 이들이 안전하게 안겨 울 수 있도록 국민의 품이 필요할 때다.

<권수영 연세대 교수·가습기살균제보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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