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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세상읽기

고용 저주 사회

opinionX 2019. 1. 25. 10:50

최저임금 정책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한쪽에서는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올라 노동시장이 위축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노동 가격이 오르니 기존 노동자마저 해고해서 실업률이 증가한다. 기업의 활력이 떨어지고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폭등해 경제가 파탄난다. 다른 한쪽에서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어렵게 된 것은 임대료와 카드수수료 같은 다른 요인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최저임금 수준이 OECD 가입국 기준으로 볼 때 결코 높지 않으니 더 올려야 한다. 가계소득이 늘면 소비가 증가하고,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해서 경제가 성장한다.

파탄이냐, 성장이냐 다투는 사이 최저임금이 오롯이 경제 문제인 것처럼 오인되고 있다. 최소한의 사람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최저임금 정책의 원래 취지가 묻혀버렸다. 왜 최저임금을 보장해야 하는가? 편협한 경제 논리에서 벗어나려면 이러한 질문을 문화적 차원에서 근본화해야 한다. 답은 확실하다. 사람을 다른 사람의 소유물, 즉 노예로 떨어트리지 않기 위함이다.

근대 이전 사회에서 노예는 법률적 차원으로 볼 때 주인이 소유한 사물이었다. 주인은 노예를 사물처럼 사고팔고 쓰고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노예제가 폐지되면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소유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근대 시장경제에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물일 뿐이다.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재산’이 될 수 없다. 이제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에서 자유인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근대 시장경제에서도 사람의 특정 부분은 사고팔린다. 노동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소유자는 구매자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이다. 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자발적으로 자신의 노동을 팔아 살아간다. 생존만을 위해 노동을 팔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노예의 강제 노동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신분 사회와 달리 근대사회에서 인간은 아직 삶의 행로가 완전히 정해지지 않은 자유인이다. 활동을 통해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야 하는 열린 존재다. 노동은 그러한 활동의 하나다.

이렇듯 근대 시장경제는 사람을 노예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경제 논리에만 맡겨놓으면 사람이 다시 노예로 전락한다는 것을 역사는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래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여 이를 방지한다. 최저임금 정책은 바로 그러한 방지책의 하나다. 노예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최저 가이드라인이다. 그런데도 온 나라가 최저임금을 기업이 지불해야 할 불필요한 비용으로 보고 저주한다. 사실상 노예제를 옹호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기업이 노동을 구매해놓고 마치 인간을 소유한 것처럼 마구 갑질을 해댄다. 

현재 많은 청년이 비정규직과 파견직에 내몰리고 있다.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돕기 위해 노동 시장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서란다. 여기에서 고용은 기업의 경제 효율성 문제로 축소된다. 기업은 생존하는 데 잠시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청년은 희망을 빼앗긴다. 그래서 자신의 꿈과 욕망의 수준을 낮춘다. 새로 시작하려는 의지가 봉쇄된다. 청년의 진입을 아예 가로막거나 비정규직과 파견직으로 불태우는 ‘고용 저주 사회’의 노예로 전락한 청년의 가슴속에 원한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러니 사람을 벌레 대하듯 하고 입만 열면 혐오와 증오의 언어가 튀어나온다.

이렇듯 소득주도성장론이 저주에 떠밀리자 이제 혁신성장하자고 한다. 하지만 이제껏 누리던 이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인건비 줄이는 데 모두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단기적으로는 가장 효율적인 생존 방법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바보짓이다. 최고의 혁신은 다름 아닌 고용이다. 고용은 새로 오는 자에게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환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절대적인 환대를 통해 이 땅에 살게 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먼저 와있는 자들의 절대적인 환대가 없었다면 우리 모두는 시작도 못해보고 바로 소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터 잡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되갚아야 할 차례다. 청년, 새 이야기를 가지고 온 새 사람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절대적으로 환대하자.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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