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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노래는 제목부터 재미나.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 ‘수덕사의 여승’ ‘카츄사의 노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곡 ‘곡예사의 첫사랑’. 1978년 MBC 서울국제가요제 대상은 윤복희의 ‘여러분’, 듀엣 ‘산이슬’의 24세 가수 박경애가 부른 ‘곡예사의 첫사랑’은 금상. 박경애는 인천여상 친구 주정이씨와 듀엣으로 활동하다 솔로로 데뷔, ‘곡예사’를 불러 큰 인기를 탔고 50세에 그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엊그제 이 노래를 학생들과 같이 나눔. 대학에서 음악 강의를 새로 시작했는데, 뜬금없는 일은 아니고 오랜 날 월드뮤직 일을 봐왔던 몸. 우리 대중음악도 월드뮤직의 한 갈래. 아버지의 서재에 있던 몇십 장 독일 가곡 LP가 나를 이렇게 이끌었다.

1922년생인 아버지 때문에 나는 웬만해선 다 형님 삼아서 지내. 송해 샘의 별세 소식을 들었는데, 간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느낌. 1920년대생의 부음은 내게 그렇더라. 이분들의 청춘기엔 서커스 곡마단이 있었고, 이를 구경하며 즐겼던 세대. “줄을 타며 행복했지. 춤을 추면 신이 났지. 손풍금을 울리면서 사랑 노래 불렀었지. 공 굴리며 좋아했지. 노래하면 즐거웠지. 흰 분칠에 빨간 코로 사랑 얘기 들려줬지. 영원히 사랑하자 맹세했었지. 죽어도 변치 말자 언약했었지. 울어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어릿광대의 서글픈 사랑.” 작별한 슬픈 사랑도 있지만, 오래오래 지켜낸 견고한 사랑도 있어. 곡마단 쇼를 같이 구경하던 아버지와 송해 샘을 떠올려본다. 사랑에 빠진 곡예사의 줄타기와 애절한 사랑 노래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앞선 세대를 탓하고 흘겨보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다정히 걸어가야 해. 이 길에서 첫사랑 이야기도 듣고, 노래도 같이 부르면서 말이야. 세대 간 단절이 너무 크고, 이를 이어주던 귀한 분들이 속속 별이 되고 있다. 죽기 전에 자기가 가진 돈을 다 쓰고, 나눈 뒤 떠나야 해. 작은 돈이라도 친자녀에게만 남기면 백프로 망가져. 영원한 맹세도 언약도 없어라. 있다면 훈훈한 미담과 미소가 남을 뿐. 그런 사랑을 가꾸며 살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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