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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은 아무래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시작한 것 같다. 아무리 지지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아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몇몇 장관 후보자들의 과오와 논리도 입장도 없이 무조건 몽니를 부리는 야당 의원들의 억지를 보면서 답답한 열기가 지상으로 퍼진 게 아닐까 싶은 그런 날이다. 지난 탄핵정국 때도 그러했고, 지금의 인사청문회도 그러하고 국회의원들이 하고 있는 토론 중계를 보고 있자면 옳지 못한 토론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역할극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보고 있으면 지친다. 정치 혐오가 불쑥 고개를 든다. 이러거나 말거나 다 신경 끄고 싶다. 혹시 그들이 원하는 게 바로 이런 거였나. 정치 무관심.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작전은 비교적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혐오는 충분히 이끌어냈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청문회는 여전히 흥미롭다. 공직 후보자의 업무수행 능력과 도덕성 등을 함께 검증해보는 원래의 취지에 부합된 역할은 하지 못하면서 어떤 자리의 자격을 두고 벌어지는 갑론을박은 소위 이 나라 지도층이 비리나 부정의 가능성에 대해 어떤 인식 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준다. 검증을 맡은 의원들이나 소명을 해야 하는 후보자들 양쪽 모두 그렇다.

개인적으로 청문회를 보면서 가장 불편하게 들린 말은 ‘부모 마음’ 혹은 ‘엄마 마음’이라는 단어였다. 이제는 임명된 강경화 장관이 자녀의 위장전입에 대해 소명하면서 썼던 말이기도 하다. 내 자녀의 편의를 위해 주소를 옮기는 일의 부정함이 ‘엄마 마음’으로 표현될 수 있다니. 집 가까운 곳에는 학교가 없어 어차피 어느 학교든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데 주소만 옮기면 그중 평판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으니 그렇게 하라는 이웃들의 권유를 마다하고 평판과 무관하게 그저 집에서 걸어 다닐 만한 거리에 학교가 있는 동네로 혼자 이사했던 나는 엄마도 아닌 사람 같다. 자녀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일은 ‘엄마 마음’이 아니라 ‘부모 이기주의’다. ‘엄마 마음’으로 포장하여 이해를 구할 일이 아니라 ‘부모 이기주의’임을 자인하고 사과를 했어야 할 일이다.

자녀의 국적 문제도 그렇다. 애초 지명 단계에서는 한국 국적으로 바꿀 계획이라고 밝혔다가 청문회에서는 협의 중이라며 말이 바뀐 자녀의 국적은 현재 절차가 진행 중이라니 그 결과를 추후에라도 밝혔으면 싶다. 자녀의 국적 때문에 부모가 국가에 봉사할 기회가 막힌다는 건 글로벌한 시대에 맞지 않는 관행이라는 강경화 장관의 청문회 발언에 동의하는 부분이 적지 않지만, 그 첫번째 수혜자가 장관과 장관 본인의 자녀가 된다면 본인의 이익을 위한 관행 개선이라는 오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은 낙마했지만 안경환 전 법무장관 후보자의 ‘부모 마음’도 과연 그 이상의 영향력은 없었는지 알고 싶다. 그가 보낸 탄원서의 내용대로 상대방의 학생도 선처를 받았는지, 다른 학생들의 규칙 위반 사례와 공정하게 다루어졌는지를 그의 낙마 여부에 상관없이 검증해봐야 하지 않나 싶다. 이는 이미 사퇴한 한 개인의 부끄러움이기 이전에 사회적 공정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몇몇 장관 지명자를 발표하면서 사전에 그들의 과오 이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전문적인 업무역량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이름을 올렸다고 했다. 한순간의 잘못이 평생을 낙인찍는 일이 생겨서는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인선이 반복해서 이어진다면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 상쇄할 만한 능력만 가지고 있다면 다 용서 받을 수 있다는 능력중심주의적 가치관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그들의 과오가 그들이 맡아야 하는 소명을 거스르는 것이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현재 인사청문회를 기다리고 있는 후보자로 교육부 장관과 노동부 장관이 있다. 공정한 경쟁과 평가가 가장 중요한 분야이다. 그들의 능력이 그 바탕 위에서 성취된 것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으로 공정한 사회의 경쟁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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