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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 살고 있는 중국인 친구 링이 페이스북 포스팅을 올린 것은 섣달그믐이었다. 대학원 동문인 링의 고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진원지인 우한에서 차로 1시간 떨어진 곳이다. 친구는 “중국의 명절인 춘제이지만,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고 했다. 외지를 방문했다가 집으로 향하던 어머니의 비행기는 우한공항에 내리지 못하고 다른 지역에 강제착륙해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알 수 없는 형편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내게 따뜻한 밥을 지어주셨던 친구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 지하철을 탔던 나는 내려야 할 정류장보다 앞서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옆자리 승객이 기침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내리고도 개운치 않았다. 누군가 기침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했다. 2015년에 겪었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가 내 안에 공포를 심어놓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1월 29일 (출처:경향신문DB)

지난 27일 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숫자로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은 ‘중국인 입국 금지요청’이다. 유튜브에는 출처를 분명히 확인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눈으로도 전염된다는 것을 의료진이 확인했다”는 주장을 펴는 청년의 ‘양심선언’이 게시 하루 만에 조회수 570만을 넘어서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 양상은 2015년 메르스사태와 닮았지만, 사뭇 강도가 더해진 것이 있다. 공포를 부추기는 음모론이나 허위정보들이 바이러스만큼 빠른 속도로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는 점이다. 우한에서 촬영된 것이라며, 병원과 거리에서 사람들이 쓰러지거나 방치돼 있는 동영상들이 유튜브에서 확산된다. 미국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발병이 백신 개발 비용을 후원받기 위해 기획된 것이라는 주장들이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공유되고 있다. 사실확인을 거친 정보의 생산이 검증으로 인해 더뎌지는 동안, 안전을 위해 자구책을 찾는 시민들은 ‘현장영상’ ‘실시간정보’라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인터넷 공간에서 허겁지겁 찾아내 소비하며 점점 더 합리적 판단의 힘을 잃게 된다. 

그러나 허위정보에 대응하는 노력들도 전 지구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국제팩트체킹연대(International Fact Checking Network)에 참여하는 각국의 팩트체커들은 자국에서 번지고 있는 동영상이나 소셜미디어의 주장들을 교차검증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허위정보를 가려내고 있다. 인터넷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공포의 확산경로로도, 진실한 정보를 전파하는 연결망으로도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정확한 정보가 초기에 공개되지 않아 악화됐던 2015년의 메르스사태는, 진실보다 더 효과적인 대책은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러나 확인된 진실이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포를 자극하는 루머에 밀리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언론은 확진자들을 좇는 사건추적식 특종경쟁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질병과 관련해 궁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한 뒤 검증된 사실에 기초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줄 필요가 있다. 시민들도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정보를 육하원칙에 따라 따져보아야 한다. 정보를 올린 사람은 누구인가? 촬영된 곳은 어디인가? 언제 발생했나? 최소한의 질문에도 답을 얻을 수 없다면 합리적 의심을 해보아야 한다. 질병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공포와 혐오, 적대를 부추기는 음모론이나 허위정보들과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름도 모르는 전염병이 다시 이 나라에 도착하면 그땐 제대로 막을 수 있을까?”

작가 김탁환이 메르스사태 피해자들을 취재해 2018년 발표한 소설 <살아야겠다>에서 작중 인물이 던진 질문이다. 질문은 다시 던져졌고, 이번에는 더 나은 답을 찾아야 한다.

<정은령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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