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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살아생전 죽은 식물도 살린다는 초록손가락이었는데 나는 그 쉽다는 선인장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꽃이든 식물이든 뭘 키운다는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 재주를 내게도 조금은 물려주신 걸까. 언제부터인가 내 손에서도 채소가 자란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해보고 싶다는 말에 안될 텐데 의심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의외로 제법 잘 자란다. 처음에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가능한 작물들, 그중에서도 쉽기로 소문난 방울토마토나 쌈 채소들을 키웠다. 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화분 농사가 아쉽기도 해서 어느 해엔가는 아예 서울 근교 텃밭을 빌려 한 철이나마 제대로 농사짓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텃밭 농사는 베란다 농사와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 아니라 자주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그해 봄은 가뭄이었다. 그래도 첫 농사라 애착이 많아서 물 주러 가는 일이 고되지는 않았다. 비료도 직접 만들고, 살충제도 천연으로 만들고, 어떤 벌레들은 나무젓가락으로 일일이 잡아도 가면서 키웠다. 베란다에서는 시도해 볼 수 없는 오이나 가지를 키워보는 일은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성급한 마음에 조금 일찍 따낸 어린 가지의 부드러운 속살은 마트에서 파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등산로에 있는 텃밭이라 그런지 어렵게 맺은 열매들을 수확하러 가면 어떤 날은 절반 이상 누군가의 손을 타서 사라져 있기도 했다. 그해 가뭄은 여름에도 계속됐는데, 여름 가뭄은 봄 가뭄과 비교할 수도 없었다. 내가 가진 텃밭은 한 평 남짓이지만, 그 텃밭을 분양해주는 농장의 넓이는 어마어마했다. 밭 한가운데에 그늘이 있을 리 없었다. 비교적 쉼터에서 가까운 텃밭을 분양받았는데도 소금기만 없다면 그 밭을 가는 동안 흘린 내 땀으로 물을 줘도 될 지경이었다. 잡초는 또 왜 그렇게 잘 자라는지, 내 밭의 잡초만 열심히 뽑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일찌감치 농사를 포기한 사람들의 밭에서 원래 심은 농작물과 알아서 뿌리내린 잡초들이 무성하게 숲을 이뤄 오가는 길에 발목까지 잠겼다. 어쨌거나 시작한 농사라 악착같이 노력은 했는데, 가을배추를 심기 위해 밭을 갈던 날, 봄여름 내내 고생하며 기르던 작물을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뽑아내면서 아, 이래서 여름 농사짓다 돌아가시는 어른들이 있구나 혀를 내두르고는 아예 농사와는 인연을 끊었다.
그래 놓고 올해 인근 청소년 도서관 옥상에 작은 텃밭을 또 분양받았다. 옥상 텃밭은 청계산 텃밭의 5분의 1이나 겨우 될까 말까한 작은 텃밭이다. 그런데도 쌈 채소 모종이 6개, 씨앗이 4종류, 열매 모종도 여섯 개나 심었다. 이번에도 아이와 함께 농사짓는다. 농사를 짓다 보면 왜 자식 기르는 일을 농사에 비유했는지 알 것 같다. 정성을 들인 만큼 자라는 것도 그렇고 내 밭 관리 못하면 남의 밭까지 피해를 주는 것도 그렇고, 뭐 하나 맞지 않는 비유가 없지만 계절과 나이를 연관 지으면 놀랍도록 일치한다. 씨 뿌리고 모종 심고, 설레며 물 주는 봄 농사가 유아를 키우는 일이라면 더운 여름 뙤약볕에서 뽑고 뽑아도 자라는 잡초와 싸우고, 벌레와 싸우고, 해줄 것 다 해줬는데 열매 맺지 않는 채소를 보며 땀으로 참을 인자를 새기는 여름 농사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를 키우는 일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싶다. 마침 우리 아이가 딱 그 무렵의 나이다. 이걸 견디고 넘어서야 가을에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거라고 머리로는 아는데, 감정적으로는 그걸 넘어서기 어렵다. 자식 키우는 일이 농사와 아무리 비슷해도 다른 건 다르다. 밭이야 내가 들인 노고만큼 내 것이지만 아이는 내가 들인 노고가 얼마든 내 것이 아니다. 밭에서는 내가 심은 열매가 나지만, 아이는 저 홀로 심은 꿈으로 열매를 맺는다. 그런 마음으로 보면 안 자란 열매도 없고, 잘못 자란 열매도 없다. 우리가 들여야 할 정성은 밭을 향한 것이지 열매를 향해서는 안될 일. 그러니 밭만 가꾸어주고 열매는 간섭하지 말자 수시로 다짐하는데, 사춘기 농사가 여름 농사라 그런지 천불 다스리기가 쉽지는 않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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