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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공감]이게 다 SNS 때문이다

opinionX 2017. 10. 18. 15:33

길고 긴 추석을 보내고 나니 한 해가 거의 다 끝나가는 느낌이 벌써 든다. 낮에는 여전히 따뜻한 기운이 넘치지만 바람이 불거나 그늘에만 들어서도 소매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은 차다. 떨어지는 은행의 구릿한 냄새들이 영락없는 가을인데 나이가 든 탓일까, 사는 일에만 골몰한 탓일까, 마음에는 가을이 물들지 않는다. 사색의 계절이니, 독서의 계절이니 하는 이야기가 다 무슨 말인가 싶다. 아침 드라마 사이사이로 채널을 바꿔 홈쇼핑을 보면서 올해는 온열매트를 장만해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하다가 과일가게 좌판에 놓인 붉고 말랑한 연시를 보면서도 달콤하겠다는 생각보다 올해 배추 값은 또 얼마나 하려나 아직 한 달도 더 남은 김장철 걱정부터 든다. 친정에서는 김장을 할 때 단맛을 내기 위해 연시를 넣는다. 연시가 한창 나오는 시절에 미리 사서 냉동실에 얼렸다가 김장철에 꺼내어 녹여 쓰는 것이다. 고추는 올해 흉작이라고 했다. 해서 묵은 고추 남은 걸 쓸까 했는데, 언니가 사놓은 것이 있어서 좀 얻어 쓰기로 했다.

이런저런 겨울준비 고민을 벌써 하다 보면 스스로가 낯설고 좀 우습다. 대단한 살림꾼도 아니고, 매사에 대비가 투철한 성격도 아니고, 굳이 구분하자면 개미보다는 베짱이에 가까운 성격인데, 왜 이렇게 느닷없이 사는 일에 몰두하는 걸까 곰곰이 이유를 찾아보니 이게 다 SNS 때문이다 싶다. 추석 연휴를 며칠 앞두고 꽤 오래 이용했던 SNS 계정 하나를 닫았던 것이다. 오래전 트위터를 이용하다 그만둔 후로 두 번째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굳이 꼽자면 SNS 소식을 따라가느라 이제 시작된 아이의 사춘기를 놓치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은 거였다.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그보다 많은 시간을 전업주부이자 엄마로 사는 내게 SNS는 세상을 향한 유일한 창구이자 세상 그 자체일 때가 많았다. 아무리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아도 따라가지 못하는 소식, 관점 더러는 문화 콘텐츠들이 거기에 있었다. 그러하니 내게 SNS를 그만둔다는 건 어떤 면에서 세상과의 단절을 자처하는 일 같아 좀 비장했다. 그런데 막상 그렇지도 않다. 특이한 경우인지 다들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가 사는, 나와 친한 동네 이웃들은 대부분 SNS를 하지 않는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SNS상의 지인들만큼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모르는 소식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도 촛불을 들었고, 그들도 생리대의 안전성 검사를 의심했고, 어금니 아빠의 범죄에 치를 떨었다.

물론 그럼에도 두 개의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게 다른 지점이 있었다. 비슷하나 다른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한다고나 할까. SNS를 한다는 건 그 두 개의 세상을 동시에 산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그러다 보면 가끔 어느 세상이 진짜인지, 어느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의지와 바람이 실제를 바꾸고 있는 건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런저런 생각 끝에 계정을 닫았는데, 한 세계가 뭉텅이로 사라진 자리에 여전히 한 세계가 남아 있다. 이 아이러니는 아무래도 현실 적응 기간의 감정인 듯 싶다.

대신 비슷한 고민 끝에 SNS 활동을 그만둔 다른 친구와 모임을 하나 만들었다. ‘회귀인류’라는 거창한 이름을 만들고 이름에 어울리는 회귀의 행위가 뭘까 찾다가 고전을 함께 읽기로 했다. 첫 책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다. 들어만 보고 읽지는 않은 책 가운데 동전 던지기 하듯 고른 책이다. 고전을 읽는다 한들 멀리 회귀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느 날 불현듯 같은 혹은 다른 SNS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래도 앞으로만 쭉 달리는 것보다 왔던 길 다시 돌아가서 되짚어 사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도 그 혼자서는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니/ (중략)/ 어떤 사람의 죽음도 그만큼 나를 줄어들게 한다/ 나는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서문에 쓰인 글이다. 나 자신을 위하여 종이 울릴 때, 나는 무엇을 할까, 어디로 갈까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가을을 아주 타지 않는 건 아닌 듯하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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