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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새 정부가 어렵게나마 진용을 갖추고 움직이면서 사회 전반에 걸친 변혁을 추진하고 있다. 오랜 세월 층층이 누적된 적폐를 척결하고 각종 제도와 시스템을 혁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난겨울 촛불혁명이 우리에게 던진 준엄한 역사적 명령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전문직’ 혁신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들을 수가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우리 사회 온갖 적폐의 핵심에는 전문직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흔히 프로페셔널이라고도 불리는 ‘전문직’이란 사회의 주요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특별히 훈련된 사람들을 말한다. ‘프로페셔널 킬러’라는 말도 있지만 여기서 프로페셔널은 어설픈 아마추어가 아니라는 뜻일 뿐이다. 전문직의 대표적인 예로는 공무원, 군인, 교사·교수 등 교육자, 의사·간호사 등 의료직, 판사·검사와 변호사 등 법률가, 기업의 전문경영인 등이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를 촛불광장으로 불러낸 거의 모든 이슈에 이들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지 않은가?
전문직이 일반적인 ‘직업’과 다른 점은 고도의 전문적 훈련을 받지 않고서는 이 세계에 진입할 수 없고 각자의 전문영역에서 사적인 이익이 아니라 공익을 추구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는 데에 있다. 이들이 신뢰할 만한 최상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윤리를 준수하며 공익을 추구한다는 것을 전제로 사회는 전문직에게 권위와 상대적인 자율성을 부여한다.
요컨대 전문직은 사회와 일종의 계약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사회가 전문직을 신뢰하는 것은 전문직이 갖고 있는 지식과 기술이 원천적으로 믿을 만하기 때문이 아니라, 전문직이 사용하는 지식과 기술이 ‘명시적이고 합리적이며, 이타적인 가치(價値)와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과대학 등 전문직 교육기관에서는 ‘프로페셔널리즘’ 교육에 상당 기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세월 우리 사회의 전문직 종사자들은 사회로부터 주어진 특권적 지위와 경제적 풍요, 권위와 자율성이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착각한 채 살아왔다. 사회적 책무를 다할 경우에만 조건부로 권위와 독립성, 지위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왔다는 것이다. 물론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으로서 성실하고 훌륭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전문직 정신을 충실하게 구현하면서 살아간다고 해서 그것으로 족한 것은 아니다. 나 하나 잘한다고 해서 내가 속한 전문직 집단 혹은 조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사회 전반의 혁신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전문직 스스로 ‘집단으로서의 프로페셔널리즘’을 고민하고 단호하게 실천해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주요 공공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전문직 집단이 스스로를 청결하게 하는 자체 정화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사회혁신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간 누적된 적폐들이 대부분 전문직과 관련돼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사회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욱 가혹한 수준으로 집단의 공공성과 윤리, 사회적 책무를 추구해야 한다.
이 같은 혁신을 이루지 못하면 국민과 사회는 머지않아 전문직과의 사회적 계약을 파기하게 될 것이다. 변호사협회나 의사협회 같은 전문직 자율조직이 존재하는 목적은 자율통제와 자기정화이다. 각 직군을 대표하는 영향력 있는 기관들과 자율조직들이 자체 혁신에 착수해야 한다.
맹자 ‘이루상(離婁上)’에 이런 글이 있다.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아이들 노래를 들은 공자가 “자네들 저 노래를 들어보게.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지만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이는 물 스스로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자존감의 상징인 갓끈을 씻기는 물이 될 것인가, 흙투성이 더러운 발을 씻기는 물이 될 것인가는 전문직 스스로 자기 집단의 물을 맑게 정화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
신좌섭 |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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