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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풍파를 겪지 않는 정권은 없다. 개혁적인 정부일수록 보수세력의 반발은 상수로 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 탈원전 등 잇단 개혁조치는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안경환·송영무·조대엽 등 장관 후보자의 인사검증 실패로 야당에 반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제보조작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국민의당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머리 자르기’ 발언이 나오자 음모론을 제기하며 국회일정 보이콧을 선언했다. 야 3당은 추경예산안과 정부조직 개편안을 손에 쥐고 정부와 여당을 흔들어대고 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한반도 정세가 엄중한 상황에서도 여야는 대립각만 세웠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협치’와 ‘소통’을 강조했다. 하지만 성과는 미비하다. 개혁 입법은 야당의 협조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협치를 통한 개혁 입법의 필요성을 중국 전한의 5대 황제였던 문제(文帝)에게 물어봤다. 한고조 유방의 넷째 아들인 문제는 23년간 재위하면서 악법 폐지에 주력했다. 위민(爲民)정치를 실천했고, 흉노에 대한 화친정책을 펴며 이른바 ‘문경지치(文景之治)시대’를 열었다.

- 기득권 세력의 거센 저항에도 개혁 조치를 단행했는데.

“23살 때 황제에 즉위하자마자 연좌제를 폐지했다. 오랫동안 존속해온 법을 폐지하면 큰 혼란이 빚어질 것이란 반론이 거셌지만 연좌제는 사라져야 할 악법이었다. 신체의 일부를 자르는 육형(肉刑), 비인간적인 궁형(宮刑·생식기를 없애는 형벌)도 폐지했다. 법과 제도는 바로 세워야 하고, 죄는 정당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백성이 따른다.”

- 민의정치를 실천한 황제로 손꼽힌다.

“백성들의 지혜와 식견을 모으고, 그들이 겪는 고충을 헤아리기 위해 ‘여론 수렴령’을 내렸다. 그릇된 정치와 못난 정치가를 비판하는 백성을 처벌해선 안된다는 취지에서 ‘비방죄’도 폐지했다. 통치자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귀담아듣고, 직언하는 신하를 물리쳐선 안된다. 그게 통치자가 갖출 덕목이다.”

취임 두 달을 갓 넘긴 문 대통령 지지율은 80%를 웃돈다. 하지만 지지율은 거품과도 같다. 언제든 꺼질 수 있다. 지지율을 의식한 국정운영은 ‘포퓰리즘의 덫’에 빠지기 쉽다. 핀란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무민 마마(국민 엄마)’로 불린 타르야 할로넨은 2000년 취임해 12년간 재임했다. 첫 임기 6년간 지지율은 최고 88%였고, 퇴임할 때도 80%대를 유지했다. 이웃집 아주머니와도 같았던 할로넨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두터웠다.

-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 비결은.

“리더는 변화를 이끌어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려면 시민들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소통하는 리더만이 개혁이란 열차에 시민들을 태울 수 있다.”

- 재임기간동안 핀란드를 국가청렴도, 국가경쟁력, 환경지수, 교육경쟁력 1위 국가에 올려놨다.

“내가 가진 단 하나의 기준은 시민이었다. 모든 사안을 시민 행복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했다. 경제주체에게도 ‘시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핀란드가 강소국 반열에 오른 것은 상생을 추구하려는 시민들의 마음이 보태졌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소탈하고 탈권위적이다. 그렇다고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에 견줄 정도는 아니다. 청년 시절 독재정권에 맞서 게릴라 활동을 했던 그는 14년간 감옥에 갇혀 있었다. 1985년 국제사면위원회의 도움으로 석방된 뒤 2009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대통령궁을 노숙자들에게 내주고 허름한 농가에서 아내와 단둘이 살았다. 월급의 87%를 기부하고, 소득 재분배 정책을 편 그를 프란치스코 교황은 ‘현자(賢者)’로 지칭했다.

- 검소한 대통령의 전범이란 평가를 받는다.

“나는 가난하지 않았다. 다만 절제했을 뿐이다. 하지만 시민이 고르게 잘사는 나라를 만들려 했던 ‘욕심’은 그 누구보다 컸다.”

- 대선 경쟁자였던 다닐로 아스토리를 부통령에 임명하는 협치를 실천했는데.

“협치의 길은 ‘최악의 협상이 최선의 전쟁보다 낫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야 열린다. 정치인은 언제든 ‘내 잘못이다’ ‘내가 틀렸다’라고 말할 용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

문제와 할로넨, 무히카는 민의를 나침판 삼아 변혁의 길을 갔다. 문 대통령도 이들처럼 과거 정부와 다른 길을 가려 하고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문 대통령도 협치라는 날개를 달고, 변화와 개혁이란 험하고도 먼 길을 가야 한다. 그래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다. 그게 문 대통령이 마주해야 할 ‘운명’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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