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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범대학에서 법학과목을 담당하는지라 학생들에게 ‘법 교수님’이라 불린다. 쑥스럽긴 해도 싫지는 않다. 전국 대학교원 가운데 김 교수님 아닌 분의 절반 이상은 이 교수님일 테지만, 법 교수님이란 별칭을 가진 이는 (법학전공 교원이 한 학과에 한 명인) 사회교육과 아니면 드물 테니 말이다.
부임한 지 얼마 안돼 학과 엠티 지도교수로 따라갔을 때였다. 학생들과 친해지고픈 조바심에 일주일 전부터 밤마다 이불 뒤집어쓰고 혼자 게임을 연마했다. 엠티 당일 난 호기롭게 조별 놀이판으로 뛰어들었고, 그 결과 내가 들어간 조마다 흥이 깨졌다. 경직된 포즈로 놀 줄 아는 시늉하던 신입 선생님이 옆 조로 옮겨가면 그제야 침잠된 분위기가 슬며시 되살아났다. 시무룩해진 나는 쪽방에 웅크리고서 다른 교수님들이 돌아가자 하시기만 기다렸다.
그리고 몇 계절 지나서였다. 복도를 걷다 저편의 학생들을 향해 “안녕하세요?” 인사하자, 옆에 있던 분이 “아직도 말 안 놓으셨나요?” 물으셨다. 대학원 아닌 학부에서는 학생들이 불편해할 수 있으니 말 놓는 것이 어떻겠느냐 조심스레 조언하셨다. 나 역시 고민하던 문제였기에 그 충고가 마음에 남았다.
어떤 관계에서든 반말을 해야 가까워진다고 믿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서로 존칭하면서도 얼마든 거리를 좁힐 수 있다. 문제는 내 경우 소신을 지키고자 ‘안’ 놓는 게 아니라 용기 없어 ‘못’ 놓는다는 점이었다. 모종의 교육철학으로 경어를 고수하는 것이라면 일관성을 가져야 맞을진대, ‘~씨’라는 존칭은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음과 같은 아동연극 풍의 말투가 되었다: “동환이는 어쩌다 발을 다쳤나요?” “다음 단락은 은희가 읽어볼래요?” “수광이 시험공부 파이팅하세요!”
그리하여 그 학기 중간고사를 기점으로 결심했다. 말 놓기로. 3학년 지도학생 면담 중에 처음 시도했는데, 예상보다 더 어색하여 대화가 툭툭 끊겼다. “이래야 가까워진대서….” 말끝을 흐리며 양해를 구하자 학생은 “그런 측면이 없지 않죠”라고 답했다. 며칠 후 2학년을 면담하면서는 오늘 말 놓을 거라 어색할 거라고 미리 일러두었다. 그러자 학생이 다 안다는 표정을 짓는 것 아닌가? 안 그래도 법 교수님이 드디어 말 놓으시려는 것 같다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했단다. 3학년 선배들한테는 이미 하셨다던데 우리한테는 여전히 용기 못 내시니 면담시간에 네가 좀 도와드리라고 동기들에게 임무를 부여받았다 했다. 그러면서 진지하게 덧붙였다. “실수해도 되니까 저한테 연습하세요. 말 놓는 거요.”
그날 오후에는 학과대표가 무언가 상의하러 찾아왔다. 이야기를 마치고 연구실 문을 나서던 그 친구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런데 말 놓으시니 훨씬 좋습니다” 했다. 하나도 안 어색하다고, 거리감이 줄었다며 싱긋 웃는 것이었다. 비록 어투는 군복학생의 ‘다나까체’였으나 표정만큼은 그간 본 가운데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야트막한 벽 하나가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이럴 것을 왜 진작 말을 안 놓았을까 싶었다. 그랬더라면 학생들과 더 빨리 가까워졌을 텐데.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만일 내가 첫 학기부터 말을 놓고 엠티 가서 게임도 잘하는 선생님이었더라면 우리 사이에는 허물어질 벽 자체가 부재했을 테다. 벽이 처음부터 아예 없었을 경우, 그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의 기쁨 역시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경직된 경어체를 쓰며 분위기 망쳤다고 의기소침해했던 그 시간들을 아무튼 우리는 함께 보냈다. 우리 사이에 벽을 만들어내었을 어색한 순간들은 ‘관계의 역사’로 차곡차곡 쌓여, 도리어 그 벽을 깨고 서로에게 한 걸음씩 다가서는 동인이 되었던 것이다.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며 고작 말 놓는 것 갖고 별 생각을 다하는군, 하실지 모르겠다. 수많은 법적 쟁점들이 제기되는 와중에 법 교수님으로서 이런 일화나 끄적거리려니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관계의 벽을 만들었던 바로 그 기억들로써 도리어 벽을 헐어내는 경험은 경이로웠다. 훗날 나의 학생들 또한 사회선생님이 되어 그들의 어린 학생들과 그리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이소영 |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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