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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는 시대의 변곡점마다 미래교육을 위한 보고서를 발간해 왔다. 작년 11월에 세 번째 보고서를 발간했고, 올해 3월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번역서가 공개되었다. 인류가 당면한 문제 앞에서 미래에 대한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보고서는 더 늦기 전에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공공재로서의 교육일 뿐 아니라 공동재로서의 교육으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했다.

공공이라는 말의 출처는 <사기>이다. 왕이 행차하는데 한 사람이 다리 밑에서 갑자기 뛰어가는 바람에 왕을 태운 마차의 말이 크게 놀랐다. 그를 겨우 벌금형에 처했다는 것을 듣고 화가 난 왕에게 장석지가 말했다. “법은 천자가 모든 사람들과 공공(公共)하는 것입니다. 법조문보다 더 무겁게 처벌한다면 법이 백성들에게 신뢰받지 못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제공되고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공공의 오래된 뜻이다.

공동의 의미는 맹자가 말한 ‘여민해락(與民偕樂)’에서 유추된다. 한나라 때 조기는 이를 ‘그 즐거움을 백성과 공동(共同)했다’고 풀이했다. 문왕이 누대와 동산을 조성할 때 일하러 온 백성들이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한 것은 왕이 그것을 혼자 즐기지 않고 모든 사람들과 공동으로 즐겼기 때문이라는 문맥이다. 이처럼 공동은 개방과 공유의 개념이다.

미래교육 보고서를 읽는 내내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기쁨보다 답답함과 불편함이 앞섰다. 진단과 주장이 너무 옳아서 불편하고,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 달라서 답답했다. 우리는 여전히 교육에 공공의 재정을 투입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 지원은 부족하면서 결과가 안 좋다고 다그치는 가운데, 교육은 사적 재원을 투자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학과와 학교, 지역과 국경의 벽을 허물고 지식을 공유해야 할 때라는 당위를 부정하기 힘든 만큼, 그럴 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다는 현실이 눈에 밟힌다. 그러나 이 보고서의 전제인 인류와 지구가 놀랍도록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면, 교육에서만큼은 공공과 공동의 자리에서 다시 출발할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이 멀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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