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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정승은 청빈함과 엄정함, 너그러움 등의 모습으로 여러 미담에 등장한다. 그중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어린 종 둘이 다투었는데 한 종이 와서 상대의 잘못을 호소하자 황희는 “그렇지, 네 말이 옳구나”라고 다독거렸다. 잠시 후 온 다른 종에게도 황희는 “그렇구나, 네 말이 옳지”라고 동의했다. 이를 본 조카가 이의를 제기하자 황희는 “네 말도 옳구나” 하고는 읽던 글을 계속 읽었다.

이 일화를 어떤 의견이든 인정하고 받아주는 포용력으로 읽거나, 시비를 따지기보다 마음에 공감해주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또는 건성건성 대답하고 자기 할 일만 하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태도로 세상에 부합하는 기회주의자, 혹은 쉽게 속을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정치가의 면모를 발견할 수도 있다.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옴니버스 구성에 ‘인권과 호식’ ‘미란과 은희’ ‘옥동과 동석’ 등 오랜 친구나 가족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았는데, 하나하나 상대에 대한 지독한 오해로 가득 차 있다. 갑으로서는 도저히 을이 이해될 수 없는 상황인 게 맞는데, 을의 입장을 알고 나면 이해를 넘어 공감이 일어나면서 오히려 갑을 원망하게 된다. 다시 갑의 심정을 떠올리면 둘 다 그럴 수 있었겠다는, 누구도 맞고 틀린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롤러코스트에 기꺼이 탑승하게 만드는 것은 작가와 배우들의 힘이지만, 우리 삶의 장면들이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 개인적인 일에 불과하기에 그런 거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 관계뿐 아니라 사회적 이슈에서도 상대가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아예 마음을 닫아 버리는 건 문제다. 매체의 발달로 정보량이 많아지면서 우리는 상황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어떤 대상을 비판 혹은 비난하곤 한다. 사안에 따라서는 분명한 입장과 주장이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지만, 하나만이 아니라 둘 다, 혹은 셋 다 옳을 수도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어쩌면 황희 정승은 이미 그것을 보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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