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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과로사회로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30인 미만 기업의 추가연장근로제 시한을 2년 더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해외 건설노동자들에게는 특별한 사정이 생겼을 때 주 64시간 이내까지 연장노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무한 노동으로의 질주를 보는 듯하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할 상황은 누가 책임질 것인지 모르겠다. 저임금, 영세, 고령, 간접고용, 여성 등 취약노동자에게 더 가혹한 상황이 될 것 같다.

제조업과 건설업의 장시간 노동 문제는 오래된 이야기다. 병원 간호사, 판교 IT 개발자, 유통 판매직 노동자 4명 중 1명은 52시간 이상 일한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크런치 모드와 같은 집중 업무는 IT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는 대표적 문제점 중 하나다. 연장 및 야간 근무 등 각종 수당을 약정 임금에 포함토록 하는 포괄임금은 장시간 노동의 원인 중 하나다. 특히 정부가 이야기하는 스타트업은 더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5월3일)와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6월23일)까지 포함해 현재 여덟 차례의 정책에 노동시간 내용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정부의 노동시간 정책이 초래할 문제들이 적지 않다. 우선 1주일 52시간 상한 시간의 유연화부터 예외 업종의 확대가 미칠 영향이다. 기업과 산업의 수요를 이유로 정책 변화의 필요성을 피력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훼손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특히 주야 맞교대 밤샘 노동은 중대재해 사고로까지 이어진다. 2020년 한 해만 보더라도 업무상 뇌심혈관질환 질병(273건)과 과로사(61건) 승인 건수만 보더라도 적지 않다. 장시간 노동자들의 탈진이나 소진 그리고 우울증과 감정노동의 위험도가 높은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게다가 적절하고 휴식과 안정이 보장된 일자리는 20% 남짓에 불과하다. 택배나 마트배송 기사들의 현실을 잊으면 안 된다. 불충분한 회복 상태에서 일할수록 피로는 누적되고 건강과 작업장 안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연차휴가나 유급병가조차 없는 곳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야 한다. 특수고용이나 플랫폼노동자들이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 점유율 1위의 ‘쿠팡’ 물류배송과 24시간 모바일 세탁서비스 ‘런드리고’의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노동시간의 불평등이 생각보다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들에게는 일터의 안전과 건강의 문턱이 너무 높다.

몇해 전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가 영화로 상영되었다. 산업혁명 시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 놓인 아동노동 문제를 보여준다. 하루 14시간 혹은 18시간 일을 시켰다. 노동을 상품화해 착취를 발판 삼아 자본이 형성된 시기였다. 하루 최대 10시간 노동을 규정한 공장법(1847년) 개정도 이때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굴뚝 청소부(1797년)의 첫 구절도 다르지 않다. 몸이 작은 꼬마들만 가능한 일이었기에 임금이 싼 아동 노동을 착취했다. 175년이 지난 현재 기업 수요에 맞추기 위해 52시간 상한이 장애요인으로 언급된다. 낮은 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려 하는 사람들까지 막는 것이 불공정이라고 한다. 산업혁명 초기와 무엇이 다른지 반문하고 싶다.

우리는 1953년 1일 8시간, 1주 48시간의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세 차례의 노동시간 단축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국제노동기구(ILO)의 22개나 되는 노동시간 협약 중 주 40시간(47호, 1935년 채택) 협약만 비준한 상태다. 연장근무나 야간노동은 물론 교대제와 연차휴가 및 유급병가 등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무한 노동으로의 회귀를 더는 방치하면 안 된다. 인간의 존엄성까지 빼앗는 공장법 시대의 일하는 좀비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김종진 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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