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시인 김수영이 노래했듯이 풀은 쉽사리 눕는다. 인간의 경험이 대뇌 피질의 신경세포 시냅스에 각인되어 있는 까닭에 우리는 풀과 나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안다. 경계가 다소 모호한 대나무(대나무는 볏과의 풀이다)와 담쟁이덩굴(나무다) 같은 식물을 논외로 치면 대부분의 풀은 한 해가 가기 전에 땅 위로 솟아난 부위인 줄기가 죽으면서 사라진다. 죽기 전에 풀은 서둘러 꽃을 피우고 많은 양의 씨를 주변 여기저기 퍼뜨려 놓아야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한 세대가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풀의 삶은 간소할 수밖에 없다. 반면 나무는 자신의 내부에 죽음을 안고 살아간다.

풀과 나무는 둘 다 관다발 조직을 갖는다. 물이나 영양분이 들고 나는 통로인 관다발은 물관과 체관으로 구성된다. 뿌리를 통해 흡수된 물과 무기 염류는 안쪽의 물관을 지나 잎과 세포에 공급된다. 한편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포도당과 탄수화물은 물관의 바깥쪽에 있는 체관을 통해 저장되거나 세포의 에너지원이 된다. 이들 물관과 체관 사이에는 왕성하게 세포 분열을 하는 부름켜가 끼어 있다. 부름켜 세포는 안쪽으로 자라서는 물관을, 밖으로 자라서는 체관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사는 한반도와 같은 온대 지방에서는 부름켜의 활성이 계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 결과 나이테가 생긴다. 사실 나이테는 물관과 주로 관계가 있다. 봄여름 동안에 빠르게 자란 물관은 상대적으로 옅은 색이지만 가을에 더디게 자란 물관 부위는 짙은 동심원을 그리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나이테의 모습을 드러낸다. 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부름켜가 다시 일을 시작한다. 이때 작년에 활동했던 물관은 죽음을 면치 못한다. 하지만 이들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나무의 둥치를 굵게 만든다. 따라서 둥치 굵은 나무의 속은 더 이상 물관의 노릇을 하지 못하고 죽어 있는 셈이다. 이렇게 맨 바깥쪽 물관만 살아 있는 나무는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잎으로 보내 광합성에 사용하게 한다. 2월 말에서 3월 초 고로쇠나무 수액을 받을 때 나무 표면에서 구멍의 깊이가 약 2㎝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아도 나무의 이런 해부학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부름켜의 바깥 부위인 체관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밖으로 밀려나 수피로 변하면서 최종적으로 인간의 피부처럼 떨어져 나간다. 비가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분 다음날 나무 둥치 아래를 한번 살펴보라. 나무껍질이 우수수 떨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때 물관이었다가 지금은 나무를 지탱하는 가운데 부위(심재)의 튼실함 덕에 높이 자라난 나무는 광합성을 왕성하게 수행하며 생태계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했다. 관다발 조직을 가진 식물은 4억2000만년 전인 데본기에 양치류 형태로 엄청나게 번성했다. 수십 미터에 이르는 인목(鱗木)과 나무고사리 등이 지구 표면을 수놓았다. 이때 지구는 대륙이 한데 모여 있었던 판게아 시절이었고 습지가 많았다. 이 습지에 쓰러진 거대한 나무고사리와 인목이 퇴적되면서 다량의 석탄이 만들어지게 된다. 바야흐로 석탄기가 시작된 것이다.

미국 지질학회에서는 석탄기를 전기인 미시시피기와 후기 펜실베이니아기로 나누어 구분한다. 지금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집의 지하에서 석탄이 나오면 주정부에 양도하겠다는 서류에 서명해야 집을 살 수 있다. 석탄이 매장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광범위하게 석탄이 매장되기 위해서는 지질학뿐만 아니라 화학도 가세해야 했다. 나무의 목질소라고 불리는 리그닌(Lignin)이 진화한 것이다. 나무의 목질을 구성하는 세포벽은 포도당 다당류인 셀룰로오스와 방향족 수산화물의 중합체인 리그닌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탄기에는 이들 고분자 화합물을 분해할 수 있는 생태계가 아직 조성되지 않은 데다가 뿌리가 약한 양치류가 퇴적될 수 있는 지질학적 교란도 흔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광합성 과정에서 합성된 탄수화물이 이산화탄소로 연소되지 않고 고스란히 땅에 묻혔다. 그렇기에 석탄은 한때 지상의 삶을 영위했던 고대 식물의 아바타이며 그 주성분은 탄소이다.

하지만 고생대 이후부터는 나무의 고분자 물질을 분해할 수 있는 세균과 곰팡이, 곤충 등이 차근차근 진화해 나오면서 지구는 석탄기처럼 본격적으로 탄소가 매장될 기회를 다시는 얻지 못했다. 탄소가 산소와 반응하여 이산화탄소로 또 그 역순으로 순환되는 체계가 점차 균형을 잡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쓰는 화석 연료인 석탄은 석탄기에 거의 유일하게 다량으로 매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석탄은 땅속 깊은 곳에 퇴적된 채 수억 년의 세월을 보낸 뒤에야 비로소 근대 산업혁명의 불씨가 되었다. 페름기 이후 축적되었다는 석유도 이 흐름에 가세했다. 4차 산업혁명이 세간의 화두인 현재 우리는 화석 연료가 고갈된 이후의 세상에 대해 다시 고민한다. 그러나 인류가 현재의 삶의 방식을 지속한다면 우리에게 답은 많지 않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바퀴를 무려 네 개나 가진 승용차로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할 때 우리는 약 80㎏의 이산화탄소를 대기권에 보탠다. 하지만 그동안 자동차는 단 1g의 산소도 만들지 못한다. 다만 과거에 쓰지 않았던 산소를 매우 빠른 속도로 소모할 뿐이다. <탄소의 시대>의 저자 에릭 로스턴은 연비 좋은 차로 수원과 서울을 왕복할 정도인 약 4ℓ 정도의 석유가 과거 식물 90여t에 해당한다고 일갈했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일반 칼럼 > 김홍표의 과학 한귀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45억년  (0) 2017.09.20
포유동물의 사치스러움  (0) 2017.08.23
방광은 왜 거기에 있게 됐을까  (0) 2017.06.28
산소와 숨쉬기  (0) 2017.05.31
밥을 먹는다  (0) 2017.05.08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