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세상읽기

국과원

opinionX 2019. 10. 14. 15:26

-2018년 10월 11일 지면게재기사-

조국과 나경원. 386세대의 대표주자로 각각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대표한다. 조국은 ‘민주주의’를 최고 가치로 삼는다. 민주주의는 경제민주화와 표현의 자유를 뜻한다. 소득주도성장과 국민성장 모두 경제민주화를 위한 것이다. 검찰개혁은 군사 언어가 통제하는 검찰의 위계질서를 시민 언어로 조절하기 위한 것이다. 나경원의 제일 가치는 ‘성장주의’. 성장주의는 경제성장과 시장의 자유를 말한다. 현재 한국 사회가 겪는 모든 문제는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사회주의 포퓰리즘 정책 탓에 생긴 것이다. 기업가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지속해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사회 전 영역에 시장 자유를 확대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성장주의는 한국 현대사의 두 기본가치로 서로 경합하면서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함께 일구어왔다. 진보와 보수 모두 공적 담론에서는 민주주의와 성장주의에 기댄다. 진보도 성장주의를 설파하고, 보수도 민주주의를 찬양한다. 가치의 차원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무엇을 앞세우느냐 정도의 차이다. 그런데도 진보와 보수는 마치 가치의 차원에서 완전히 다른 것처럼 격렬히 다툰다. 진보는 보수를 수구꼴통이라 조롱하고, 보수는 진보를 종북좌빨이라 낙인찍는다. 다소 과한 듯하지만, 이는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을 주고받는 민주주의 사회라면 어디에나 나타나는 정상적인 정치 과정이다. 사실 이런 ‘만들어진 차이’ 때문에 선거도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진보와 보수가 아주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조국과 나경원의 삶을 접하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사회학에서는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을 조절하는 규칙을 ‘규범’이라 부른다.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어도 규범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한 종교 안에 수많은 교파가 존재하는 이유다. 하도 싸우길래 사람들은 조국과 나경원이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어느 정도 믿게 되었다. 그런데 목적달성을 위해 온갖 사회자본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너무나 쌍둥이라 화들짝 놀랐다.

“난 나경원과 관련된 의혹이나 소문 또는 팩트에 대해 별로 놀랍지도 화나지도 않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일 거라는 예상이나 편견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조국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뉴스를 접할 때는 허탈 씁쓸. 때론 다소 분노.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가 이런 거였나?”

지방대 자녀를 둔 한 386세대가 대화 도중 내뱉은 한탄이다. 그는 미국에 장기체류할 당시 자녀를 그곳 학교에 보냈다. 귀국할 즈음 아이를 미국에 남겨둘까 잠시 고민하다가 접었다. 돌아오니 당장 극심한 입시교육이 아이를 맞이했다. 영어 특기생 입학을 노리고 외고에 보낼까 하다 그만두었다. 자신이나 아내 모두 ‘혼자 힘’으로 시험 봐서 대학에 들어가지 않았던가. 주변에서 품앗이로 서로 자녀 스펙 쌓아주느라 바쁠 때도 짐짓 무시했다. 자녀는 정시로 대학시험을 보았고, ‘스카이’는커녕 ‘인서울’도 들어갈 수 없었다. 재수했지만 별무소용. 결국, 지방대로 낙찰됐다. 조국과 나경원으로 도배된 뉴스를 보다, 나지막이 읊조렸다. “미안하다, 아들아.”

가치와 규범이 일관된 보수가 차라리 더 낫다! 아마도 적잖은 사람이 이와 비슷한 삐뚤어진 분노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조국 규탄 촛불집회를 연 일부 스카이대생의 감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터. 나는 시험 보고 들어왔는데, 저들은 부모 덕 본 것 아닌가? 떳떳이 공정사회를 외친다. 그런데 이 시험이란 게 뭔가? 오지선다형, 단편적 토막지식 암기력 테스트다. 시험 한 번으로 평생의 복권을 기대한다. 그렇다면 부모 덕도 기대할 수 없고, 순간 암기력 테스트에도 능하지 못한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가? 부모의 경제자본, 문화자본, 사회자본이 부족하다 보니 고급 스펙은커녕 기초적인 인적자본조차 쌓을 형편이 안되는 ‘지방 청년들’. 이들에게 공정이란 스카이나 인서울끼리 벌이는 내부경쟁에 불과하다. 경쟁 밖에 자신을 놓고 가족 안에서만 살 궁리를 한다.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으니 우짖지도 않는다. 사실 미래를 만들어갈 청년 대다수는 지방에 산다. 이들의 삶을 살피지 않고선 민주주의든 성장주의든 소수 누리는 자들만의 휑한 잔치일 뿐이다.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 ‘국과원(조국과 나경원)’이 역설적으로 일깨운 진실이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