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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주장이나 종교적인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간혹 사람들은 단식을 한다. 한두 끼는 몰라도 나는 여러 날 굶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젊은 날 나는 단식을 하던 빙장 어른 앞에서 회 한 접시에 두 병의 소주를 꿀꺽 한 ‘인정머리 없는’ 짓을 자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분은 나중에 ‘맛있게 먹기 위해’ 지금 단식을 하노라고 말씀하셨다. 매우 흥미로운 얘기였지만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지내다 나중에 미국에서 실험하는 도중에 그 말을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우연히 찾아왔다.

아마 2005년이었을 게다. 누구라도 그렇듯 실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진행된 최신의 연구 결과물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인터넷을 통해 새롭게 발표된 논문을 읽는 게 주된 일과가 된 것이다. 어쨌든 그때 읽었던 논문은 24시간 동안 굶은 섬유아세포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은 생명의 역사 내내 배불리 먹은 경험이 없기에 동물들이 굶는 일에 잘 적응되어 있다는 따위의 슬픈 사연은 아니었다. 대신 배양액에 혈청이 없어 굶주린 세포 표면에서 안테나 같은 뭔가가 돌출된다는 내용이었다. 돌출된 세포 소기관은 흔히 섬모(cilia, 纖毛)라고 불린다. 보통 이 소기관은 노잡이처럼 단세포인 짚신벌레를 움직이게도 하지만 기도(氣道)의 상피처럼 고정된 세포에서는 먼지나 세균을 붙잡은 점액을 목 밖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최신 생물학>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이 사용한 세포는 섬모를 써서 움직이는 능력은 없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과학자들은 세포의 표면에 돌출된 안테나 모양의 섬모를 운동과 결부된 소기관과 따로 구분하여 일차(primary)섬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꼬리를 움직여 정자가 움직일 때 또는 기도 상피세포가 섬모를 움직여 점액을 운반할 때 관여하는 단백질 묶음은 본질적으로 같다. 움직임을 담당하는 축(axis) 구조가 없는 일차섬모는 세포 안에서 주로 감각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2005년 논문에 등장했던 세포는 과연 무엇을 감지한 것일까? 분명 세포는 배양액의 영양소가 ‘적음’을 감지했을 것이다. 그 뒤 ‘셀’이라는 저널에 게재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혈청을 다시 공급받은 세포 표면에서 일차섬모가 눈 녹듯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즉 일차섬모는 굶주린 세포의 표면에서만 형성된 것이다. 그 뒤로 다양한 종류의 세포에서 일차섬모가 발견되었다. 심지어 지방을 저장하는 세포에서도 그 존재가 밝혀졌지만 섬모는 주로 우리의 감각기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밝음과 어두움을 감지하거나 색상을 구분하는 눈의 세포들도 표면에 섬모가 있다. 평형을 담당하는 귀의 세포 및 후각을 담당하는 세포들 모두 섬모에 의지해 자신의 소임을 묵묵히 수행한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나는 단식을 하는 사람들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나랑 마주했던 그 어른도 단식에 따른 생리적 변화가 바로 저 감각의 예민함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먹을 것이 부족한 환경의 변화를 인식한 세포들이 온갖 감각을 동원하여 먹을 것을 찾으려는 시도를 할 것이라는 정황이 익히 연상되는 것이다. 개별 세포도, 그 세포의 집결체인 생명체도 모두 긴급한 상황에 대응하고자 애를 쓴다. 

이렇듯 굶으면 세포 표면에서 형태학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만 세포 안에서는 자기소화(自己消化, autophagy)라는 세포 과정도 진행된다. 스스로(auto) 먹는다(phagy)는 뜻의 이 과정은 당장 긴요하지 않은 낡은 단백질이나 손상된 세포 소기관을 처분하여 세포가 굶주림을 모면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효모에서 이러한 현상을 오랫동안 연구한 일본의 오스미 요시노리 박사는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오스미 박사 연구팀은 자기소화에 관계되는 유전자를 없애버린 몇 종류의 생쥐 새끼가 고작 12시간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탯줄을 통해 어미로부터 영양분을 더 이상 공급받지 못하는 생쥐의 새끼가 초유를 먹기 전까지 자기 스스로 영양소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신생아도 마찬가지다. 출산 직후 신생아의 혈중 포도당의 양을 측정한 연구에 따르면 혈액 안의 포도당은 1시간이면 바닥으로 떨어진다. 정상적인 신생아들은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분해하여 혈중 포도당의 양을 회복하고 자기소화 과정을 통해 아미노산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별 문제를 겪지 않는다. 그러나 신생아에 대한 영양 공급이 늦어지거나 자기소화 능력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성인들도 하루 정도 굶으면 간에 저장된 창고에서 뇌가 사용할 포도당을 우선 갹출하고 자기소화를 진행하여 아미노산을 충당한다. 하지만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는 못한다. 본디부터 그렇게 진화되었기 때문이다. 동물의 근육에 저장된 포도당 덩어리는 포식자 동물로부터 재빠르게 도망치거나 먹잇감을 쫓기 위해 비축된 것이며 다른 목적으로 양도할 수 없는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았다. 잠깐 굶더라도 우선은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굶는 시간이 길어지면 근육단백질, 나중에는 지방산을 분해하여 입맛 까다로운 뇌를 먹여살린다.

굶주린 세포 혹은 생명체가 일차섬모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자기소화를 진행하기도 한다면 이 두 과정 사이에는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이들 두 과정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섬모가 없으면 자기소화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아직 정확한 생물학적 전모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뇌와 주변 기관 모두에서 벌어지는 이런 상호작용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일차섬모가 ‘실질적으로’ 인간의 모든 세포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을 최근 들어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접하면 나는 자주 뇌까린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모르고 있는 것일까? 과학의 길은 참 멀고도 멀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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