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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마지막으로 본 곳은 10년 전 화성외국인보호소였다. 말로만 듣던 외국인보호소는 황량한 벌판에 서 있었다. 가을볕이 뜨거워서 버스에서 내려 걷는 동안 이마에 땀이 맺혔는데, 막상 그와 마주한 곳은 서늘했다. 면회실 철창 안에서 그는 웃고 있었다. 뭣 하러 여기까지 왔냐고, 오는 데 멀지 않았냐고, 딸은 잘 있냐고. 그는 안부를 물을 수도, 괜찮을 거라고 위로할 수도 없어 머뭇대는 철창 밖의 사람을 도리어 걱정했다. 가물가물한 그날의 기억에서 선명한 것은 그의 목소리였다. 평소와 다르게 낮았던 그의 목소리. 그런데 그가 추방되기 바로 전날 보호소를 갔다는 이는 그의 옷차림새가 생각난다고 했다.

“맨날 까만 와이셔츠를 입었잖아요. 긴 소매를 팔꿈치까지 잘 접어서. 그런데 보호소에서는 추레한 추리닝을 입고 있는 걸 보니까 눈물 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와 MWTV(이주노동자의 방송) 사무실에서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까만 와이셔츠가 아니었다. 흰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어 입은 그는 환하게 웃으면서 먼저 악수를 청했다. 그러고 보니 동대문 봉제 공장에서 오래 일했다는 그는 항상 잘 다려진 와이셔츠를 입었다. 직접 다려 입었던 것일까? 4년 동안 함께 일했지만,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일하다가 틈날 때 커피를 마시며, 밥을 먹으며 그와 나눈 시시껄렁한 대화에는 스물한 살의 청년이 낯선 땅에 와서 살아낸 18년의 삶이 농담처럼 지나가곤 했다. 그래서 그가 이 땅에서 강제 추방될 때 함께 분노했지만, 그의 쓸쓸함과 슬픔을 깊이 헤아릴 수 없었다.

그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영화 <안녕, 미누>를 보면서 나는 비로소 이주노동자였으며, 이주노동자 인권 활동가였으며, 방송인이었으며, 스탑 크랙다운을 외친 가수 미누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꿈꾸고 사랑한 미노드 목탄을 만날 수 있었다. 뜨겁고, 아팠고, 외로웠을 긴 시간을 묵묵히 감당해낸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뒤늦게 그가 그리웠다. 네팔에 갔을 때 길이 어긋나지 않았더라면, 작년 가을 잠깐 이 나라에 왔을 때 만났더라면, 그와 나란히 앉아 함께 이 영화를 보았더라면. 부질없는 후회를 하면서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안녕, 미누.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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