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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바람이 매서웠다. 하늘은 금방 잿빛으로 뒤덮였고, 빗방울이 후두두 떨어졌다. 지하철역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목을 움츠리고 녹색 신호등이 점멸하는 횡단보도를 후다닥 뛰었다. 그는 길 건너편 건물 안에 서 있었다. 티셔츠에 얇은 블라우스만 받쳐 입은 그의 얼굴이 파르스름했다. 열여섯 살 소녀에게 날 추운데 두껍게 입고 나오지 그랬냐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군소리다. 그는 생일날 번화가에 나와 점심을 먹는 특별한 시간에 마땅한 옷을 고르느라 전날 밤부터 고심했을 것이다. 꽃샘추위만 아니었다면 봄에 딱 맞는 옷차림이긴 했다.

다행히 식당은 지하철역에서 가까워 오래 걷지 않아도 됐다. 그는 식당을 꽤 마음에 들어 했다. 학교 친구들하고 생일파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는 그는 오물오물 먹으면서 말했다.

“우리 반에 필리핀에서 온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애들하고 정말 잘 지내요. 그런데 저는 친구를 못 사귀어요.”

교실에서는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그는 큰 눈을 깜박이며 내게 물었다.

“그런데 내가 좀 다르게 생겼어요?”

나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아라비아반도의 유구한 숨결이 담겨 있다. 그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을 사막의 뜨거운 햇빛과 아라비아해의 푸른 바닷물이 그에게 닿아있다. 그러하기에 맞은편에 앉은 나와 다르기에, 너는 더 아름답다는 말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나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어른들이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당황스럽고 화도 나요.”

우리는 모두 어디서 온 걸까? 그와 나는 알고 보면 우리 모두 우주 어디선가 이 지구로 왔을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웃었다. 그는 식당에서 나와 걸으면서 텔레비전에서 제주도에 정착한 난민들의 사연을 봤다며 중얼거렸다. 참 힘들 거예요. 

지구에서 열여섯 해를 산 그는 뻔히 알고 있다. 지구인들의 진짜 질문은 ‘너는 어디서 왔느냐?’가 아니라 ‘너는 왜 여기에 왔느냐?’라는 것을. 그는 꽃샘바람을 뚫고 통통통 뛰어갔다. 그가 매서운 바람을 잘 이겨내며 언제까지나 힘차게 달리길…….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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