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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늦게 가면 남의 자식 군대 보내고 시간이 빨리 가면 자기 자식 군대 보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여기에 또 하나를 추가한다면 선거가 아닐까. 선거운동 하는 사람 입장에선 시간이 야속하리만큼 빨리 가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은 선거가 참 더디고 후텁지근하게 지나간다. 후보자는 말할 것도 없다.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한창이다. 전국 15개 지역에서 선거가 치러지고 작은 총선이라 불릴 만큼 규모가 크다. 6·4 지방선거가 끝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를 빚은 한국사회 전면적 개조의 필요성을 여당은 자기 논에 물대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사 참극과 정치 난맥은 개선의 여지가 봉쇄당했다. 야당의 무기력은 그야말로 야당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지방선거에서 세월호 참사의 국민적 분노를 여당은 탄압하기 바빴고, 야당은 관리하기에 급급했다. 낡은 정치 수사가 판을 쳤고 급기야 집권 여당이 도와달라는 앵벌이 정치쇼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무참하게도 이런 후진적 선거운동이 먹혔다. 정치집단의 정체성을 벗어난 정치 마케팅적 쇼만이 보는 이들의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정치가 무엇인지 묻고 선택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여야는 국회 과반을 지키느냐, 허무느냐를 두고 사활을 건 선거에 임하고 있다. 국민은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고립과 배제는 가속의 페달을 밟게 된다. 삶과 목숨이 걸린 선거임에도 월드컵 관람처럼 우리는 철저한 정치 소외지역으로 밀려난다. 새누리당의 코웃음 나는 변장술은 또다시 마케팅으로 한창이다. 대선 이후 수많은 공약이 쓰레기통에 처박혔고 쇄신이란 거추장스러운 옷가지가 폐기처분됐지만 심판의 표는 보이지 않는다. 새정치를 내건 새정치민주연합의 움직임 또한 개혁적 인물을 전면에 세운다지만 무력함을 벗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새누리당 손수조 당협위원장(가운데)이 1인 유세를 하자, 30-40대 엄마들이 맞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어떤 이들을 선택하고 어떤 사람을 지지해야 하는가. 지지할 사람은 있는 것인가. 국회의원 한 사람이 아니라 어떤 국회의원 한 사람을 만들어야 하는가. 평택시을 선거구를 주목하는 이유다. 평택시을 선거구엔 이명박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자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임태희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으나 고배를 마셨다. 공교롭게 평택시을 선거구엔 쌍용자동차가 있다. 2009년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함께 살자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이명박 정권이 짓밟은 곳이다. 그해 5월로부터 시작된 고통과 아픔으로 25명의 노동자가 죽어나갔다. 노동 세월호다. 시민사회의 줄기찬 사태 해결 요구에도 아직 쌍용차의 진실은 아픔의 우물 속에서 인양되지 못하고 있다.
평택시을 국회의원 재·보선에 쌍용차 해고자 김득중씨가 나섰다. 노동부 장관 대 해고자의 싸움이다. 그는 왜 출마를 결심한 것일까. 정리해고자인 그의 도전은 현실성이 있을까. 양당구도 속에서 그는 숨조차 쉴 수 있을까. 선거운동 기간에 삼성 염호석 열사 장례식에 참석하고 지방선거 이후 공권력에 짓밟힌 밀양 어르신들의 마음을 달래는 그가 선거운동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세상을 바꾸려면 힘을 키우라는 세간의 조롱 앞에 선 그는 누구인가. 선거 당일 하루 만의 투표권 행사로 만족할 수 없었던 그대가 아닌가. 정치의 변화를 갈망하고 공동체를 지키려 아스팔트 위 정치를 만들어가는 당신이 아닌가. 한 시간 일하면 밥 한 끼 정도는 먹어야 한다며 끊임없이 외치고 있는 당신의 삶이 아닌가. 정치의 한 축을 담당했던 진보진영의 역할을 이제는 찾아야 한다며 노력하는 그대 손에 쥐여진 손팻말이 아닌가. 공고한 기득권 정치에 작은 숨구멍 내기 위해 쏟아지는 거리 위 물대포를 뒤집어쓴 젖은 당신의 운동화가 아닌가.
세상이 무너져도 손바닥 하나 짚을 공간만 있어도 싸우고 버틸 수 있다. 우리에겐 지금 이 한 뼘의 벽이 절박하다. 벽 하나 만들기 위해 선거에 나선 해고 노동자가 당신이 아닌가.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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