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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사범들이 날로 늘어나 사회 문제가 되어갈 때, 이를 해결할 좋은 수가 없을까? 여기 해법이 하나 있다. 단속 대상인 마약 종류가 너무 많으니까, 이제 필로폰과 코카인·헤로인은 합법화하자. 그럼 자연스럽게 마약 사범도 줄어들 테니 말이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해법이 어디 있냐고? 이 나라 정부와 사장들이 가난한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이와 똑같다. 최저임금 심의위에서 최근 사용자 측은 최저임금 동결과 함께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별화하자는 주장을 꺼냈다. 안 그래도 최저임금 못 지키는 사업장이 많은데 계속 인상하면 위반 사업장만 늘어난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몇몇 마약을 합법화해서 마약 사범을 줄이자는 주장과 뭐가 다른가. 이런 해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아주 익숙한 얘기이다. 정부가 파견업종을 늘리자 할 때에도, 이미 불법파견이 성행하니 차라리 양성화해서 관리하자는 논리를 썼다. 비정규직 관련법을 만들 때 역시 이미 비정규직이 넘쳐나니 이를 줄이기보다 조금 더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자고 했다.
근로기준법대로 하면 비정규직·파견직 사용이 어려우니, 노동자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그 예외를 만들어온 게 이 나라 정부였다. 하지만 이들 법이 보호한 것은 저임금 비정규직이 아니라, 재벌을 비롯한 사장들이었다. 불법파견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고, 사용기간 2년을 넘겨서도 계속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그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불법으로 비정규직·파견직을 늘림으로써 정부로 하여금 법도 바꾸게 만들었는데, 사장들이 바뀐 법을 지킬 이유가 있나? 바뀐 법도 지키지 않고 있으면 정부가 계속 사장들에게 유리하게 법을 바꿔줄 테니 말이다.
최저임금 인상하라
최저임금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저임금을 동결하면 위반 사업장이 줄어들까? 아니다. 오히려 더 늘어난다. “법을 어겨도 정부가 알아서 다 해결해준다”는 인식이 사장들에게 광범하게 퍼지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별화해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런 논리로 법을 바꾸자는 주장 자체가, 법을 집행해야 할 정부가 권한을 포기하겠다고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최저임금 위반을 처벌해야 할 정부는 대체 뭐했기에 위반 사업장이 계속 늘어난단 말인가? 불법파견을 적발해야 할 고용노동부는 뭐하는 집단이기에 파견법 위반 사례가 계속 이어진단 말인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뱉는 이런 논리는, 가난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조차 없애겠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끝없이 밀어붙이는 규제 완화, 민영화 물결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렇게 가다간 최저임금 위반 단속마저 중소기업 협동중앙회에 자율적으로 맡기자는 얘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노후선박 규제를 완화하고 안전점검을 해운조합에 맡긴 결과가 세월호 참사로 나오지 않았던가. 건설 기계장비에 대한 안전점검을 민간에 맡겨놓으니 타워크레인이 무너진다. 침몰한 세월호도, 무너진 타워크레인도 안전점검 서류에는 모두 ‘이상 없음’이라 적혀 있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결과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제 철도와 의료사업에까지 영리행위를 열어주고 규제를 완화하려 하고 있다. 이렇게 가다간 음주운전 규제도 지역별로 차별화하고, 음주 단속도 주류협회에 넘길 판이다. 반대로 노동조합 활동과 집회·시위에 대한 규제, 가난한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정당을 조직하는 것에 대한 규제는 무서우리만치 강화된다. “최저임금을 지속적으로 위반하는 사업주에게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겠다.” 도대체 지킨 공약이 몇 개나 있는지 모르지만, 지금 청와대에 앉아있는 분이 지난 대선에서 약속한 내용이다. 잊혀지지 말아야 할 것은 세월호 참사만이 아니라, 이 참사를 만들어낸 끔찍한 규제 완화의 실상이다.
오민규 | 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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