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사불상(四不像)’이란 동물이 있습니다. 세상에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야생에서 사라진 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서방 세계에 19세기 무렵에 알려졌고, 그 직후 야생에서 멸종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서울동물원에서 사불상을 처음 봤습니다. 

‘사불상.’ 이름이 참 독특합니다. 꼬리는 당나귀, 발굽은 소, 머리는 말, 뿔은 사슴과 비슷한데, 가만히 보면 이 네 가지 동물 중에 어느 것도 닮지 않았다고 해서 결국 이름이 ‘사불상’이 되었다고 하네요. 서울동물원에서 봤던 ‘사불상’의 소개 내용은 이렇습니다. “프랑스 선교사인 Armand David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본국인 중국에서는 ‘milu’라고 알려져 있다. 야생에서는 2000년 전쯤에 멸종되었고, 오직 중국 왕의 사냥을 위한 장소에만 남아있었다. 후에 유럽의 사립동물원으로 이동되었다. 사불상의 발굽은 크고 넓은데 움직일 때마다 딸깍거리는 소리를 낸다. 사불상은 습지에서 수생식물을 주로 먹어서 반수생동물(semi-aquatic)로 불리기도 한다. 사불상의 털은 곱슬곱슬한데, 겨울이 되면 칙칙하고 윤기 없는 회색으로 변한다. 지금은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는 동물인데, 아주 적은 개체가 중국에 재도입되기도 했다.”

서울동물원 표지 설명에는 2000년 전쯤 멸종했다고 쓰여 있지만, 실제로는 1900년까지 중국 야생에 소수가 살아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의화단의 난’ 때 이들의 마지막 서식지가 군대 주둔지가 되면서 사람의 먹이가 되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사불상은 그 직전에 영국으로 밀반출되었던 종자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방송으로 영국 동물원에서 사불상을 관리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사불상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큼지막한 사슴 같았습니다. 덩치가 꽤 큽니다. 동물원 관리인의 설명으로는 사불상이 민첩하고 예민해서 마취 총도 잘 피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멸종했을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신만이 알 것 같습니다. 지금도 사라져가는 동식물들이 많으니까요. 그래도 이 동물을 보면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생겼습니다. 먼저 이름부터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름에 ‘아니다’라는 부정의 뜻을 담은 ‘불(不)’자를 넣다니, 그것도 네 번이나. 부정이 이들의 부정을 낳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정의 말을 빼고 이름을 다시 지으면 어떨까. ‘닮지 않았다’는 부정의 말을 걷어내고 긍정의 언어를 생각해봤습니다. 모두를 닮았다는 뜻으로, ‘사함상(四咸像)’이라고 지으면 어떨까.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바라볼 때 긍정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 실체와 윤곽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인식의 대상이 뚜렷해지면서 공감하게 되고, 처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나도 변해갑니다. 사불상의 이름을 모두 닮았다는 긍정의 이름으로 지어주고 그 실체를 바라봤다면 지금도 야생에서 이 동물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을 탓할 때에 사불상 생각을 합니다. 내가 먼저 부정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런 때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부끄러운 일이 많습니다. 부정은 결국 나에 대한 부정으로 돌아왔습니다. 긍정하는 눈으로 인정하며 바라볼 때에 아이도 바뀌고, 동물도 바뀌고, 나도 바뀝니다. 부정의 나비 효과를 긍정의 날갯짓으로 바꾸는 것은 결국 나의 몫입니다. 

역사와 인권을 부정하고, 그것도 세 번, 네 번이나 부정하고, 외교와 경제를 등에 업고 정부가 나서서 기업을 몰아세우며 또 부정하는 태도는 그래서 위험합니다. 역사의 굴레에서 고통받았던 사람들을 국가권력의 틀 안에서만 움직이라고 독촉하면 안됩니다. 아픔을 긍정하고 공감해야 합니다. 나라가 대신해서 그들의 권리를 포기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 대한 부정은 결국 지금의 우리, 우리 미래 세대에 대한 부정이 될 수 있습니다. 닮은 것은 닮았다고 솔직하게 말할 때입니다.

<함석천 |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