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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음식’이나 ‘조리’로 표현해야 할 곳에 모두 ‘요리’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요리는 ‘요리음식점’(한성주보, 1886년 10월4일치)에 처음 나온다. 조선 말 한성에 진출한 일본인들이 음식을 만들어 팔던 가게의 간판을 인용한 것인데 일본말 ‘료리’의 한자표기 ‘料理’를 조선식으로 읽고 쓴 것이다.
‘료리’는 곧 우리말 음식에 해당하는 일본말이다. 일본말 ‘야사이’의 한자표기 ‘야채’를 오랫동안 별 의식 없이 써 오다가 채소를 되찾은 것처럼 음식과 ‘음식법’을 되찾아 쓸 것을 주장한다. 요리라는 단어는 우리의 음식문화를 펼칠 ‘콘텐츠 원천’이 될 수 없다. 일찍이 방신영은 <죠선료리만드는법>(<朝鮮料理製法>, 1917)을 펴냈고 광복 뒤에는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으로 바꿔 무려 33판까지 찍어냈다.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후 <한국요리 백과사전> <한국요리> 등이 나왔음에도 이 말을 쓰는 이들이 제한적이었는데 2014년 KBS가 <요리인류>라는 연속기획물을 내보내자 사람들은 그냥 내놓고 써도 되는 말로 여기는 것 같다. ‘조리인류’나 ‘음식인류’라야 옳았다. 음식이라는 말의 가치는 ‘500년을 이어온 간장’과 같다.
중국은 날 먹을거리를 펑즈(烹制)하여 차이(菜)를 만들므로 식단의 차림표가 ‘차이딴’이다. 식사나 밥상이라는 넓은 뜻으로는 촨(餐)을 쓰니 한국음식을 한촨으로 부른다. 인스(飮食)는 먹고 마시는 것을 두루 가리키는 넓은 말로서 ‘중국 음식문화’ 같은 곳에 쓴다. 랴오리(料理)의 중국 뜻은 첫째 ‘일을 처리하거나 정리하다, 아이나 환자를 돌보다’이고, 둘째 뜻은 ‘채소를 데치다, 채소류에 고기류를 넣고 끓이거나 볶다, 또는 그렇게 만든 술안주’이다. 일본은 랴오리를 들여가 료리로 발음하며 중국은 둘째 뜻을 첫째로, 첫째 뜻을 둘째 뜻으로 쓰고 있다. 조선은 ‘음식’을 받아들였고 그 기록은 1510년경의 <번역박통사>로부터 시작된다. 1610년경 한글로 쓴 첫 조리서 <음식디미방>과 <최씨음식법>이 나왔고 <음식법(餐法)>(1854년)은 근래 영인출판되었다.
‘음식’은 두 가지로 쓰이는데 넓은 뜻으로는 장소나 일, 때를 뜻하는 말인 궁중, 절, 호텔, 뷔페, 축하, 잔치, 혼례, 계절 등의 뒤에 붙여 쓴다. 좁은 뜻으로는 음식재료 뒤에 붙여 씀으로써 낱낱 음식의 호칭으로 쓴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하다’를 붙이는 방식으로 ‘음식하다’를 써 왔고 구체적으로는 끓이다, 조리다, 삶다, 지지다, 데치다, 볶다 같은 고유말을 써 왔는데 한자말의 필요가 생겼는지 일본사람들의 쵸리(調理)를 받아들였다. 중국에서 탸오리(調理)는 ‘몸조리하다, 돌보다, 훈련시키다’ 등으로 쓰이는데 일본이 여러 사람 몫의 먹을거리를 만든다는 말로 키웠다.
우리나라 식품위생법(1962년 제정)은 조리사 자격을 규정했고, 모든 교과서는 음식 만드는 과정을 조리로 표현한다. 조리대, 조리기구, 조리학, 조리장에서 보듯 이제 조리는 가정과 사회에서 써야 하는 ‘공인된’ 말이 되었는데도 대중들은 요리법만 고집한다. 이참에 ‘음식법’을 권해드린다. 똑같은 푸성귀들을 중국에서 수차이(소채), 한국에서 채소, 일본에서 야사이(야채)로 달리 부르듯 세 나라 먹을거리들도 촨, 음식, 다베모노(료리)로 불려야 떳떳하다. 한국음식을 요리로 부르는 것은 한국음식을 일본 접시에 담는 것과도 같다.
김병연 | 전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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