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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적 전망과 희망이 분분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조용히 퍼져 감염자 수가 폭발할지, 이번에는 지나가도 가을이나 겨울에 큰 유행이 닥칠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환자가 발생하는 ‘사태’가 가장 걱정스럽다.
대구에서 2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온 위기의 순간을, 무엇보다 당시 시민들의 불안과 고통을 기억해야 한다. 많은 생명이 스러진 미국이나 이탈리아, 스페인도 마냥 남 이야기로 치부하기 어렵다. 지난주 며칠, 한국도 몇 곳은 위험하다고 불안해하는 전문가를 여럿 만났다. 마음 졸이며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을까,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것일까.
제2, 제3의 코로나를 생각하면 더 불안하다. 모두가 기대하는 백신과 치료제는 신종 감염병 대책으로는 무력하다. 코로나19 백신도 2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르는 마당에, 아직 오지도 않은 미지의 병에 백신을 준비한다는 대책은 말이 되지 않는다. 현실적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이번 동절기 유행이든 몇 년 후 새로운 감염병 유행이든, 확언하건대 완전한 해결책이나 마법 같은 것은 없다. 이번에 우리 사회가 함께 학습한 바, 세 가지 실천을 병행하는 수밖에는. ① 지금까지의 방역방법을 개선·보완하고, ② 개인 예방과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와 같은 ‘사회적 방역’을 실천하며, ③ 공공 인프라를 확충해 인명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나는 두 번째 과제로 시민협력형, 시민참여형, 시민주도형 방역을 주장해왔다. 그리고 세 번째 요소, 즉 공공 인프라 강화를 더 늦출 겨를이 없다는 점을 이 지면을 빌려 강조하고자 한다. 그 어떤 감염병 유행이든 공공 인프라가 지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 공동체의 안전과 번영을 보장하지 못한다.
우선, 공공보건의료 인프라는 적정 수준 이상의 ‘양(量)’을 가리킨다. 이미 대구에서 경험했으니, 일정량 이상의 공공병원과 병상, 이를 책임질 인력이 있어야 한다. 기본 인력과 시설이 모자라면, 진단과 치료가 늦어지고 중환자가 밖을 헤매는 사태가 벌어진다. 공공이 최초 단계 책임을 맡아 초기 충격을 완화하는 구실을 하자는 것이다.
그다음 인프라도 중요한데 이는 다름 아닌 강하고 유능한 ‘공공보건의료 시스템’이다. 이 또한 대구의 뼈아픈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으니, 복잡한 치료와 사람이 한 몸인 것처럼 돌아가야 했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하여 민간병원을 동원하고, 지역 바깥에서까지 병상을 구했으며 환자를 분류하고 무증상 확진자를 수용할 시설을 서둘러 마련해야 했다.
말이 쉽지 ‘시스템’ 구축이 얼마나 어려운가. 수많은 부서, 담당자, 돈, 책임이 함께 돌아가야 하나, 어느 지역이든 해본 적이 없는 방역대책이고 위기 때 의료 대응이다. 누가 중심이 되어 지휘하고 결정해야 할지부터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앞으로도 마치 전쟁처럼 준비하고 비축하며 연습해야 하나, 유감스럽게도 아직 관심조차 크지 않은 것 같다.
간절하게 부탁한다. 다들 새로운 방역체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때, 지금이라도 공공 인프라 강화를 위해 위의 두 가지를 확실하게 준비해야 한다. 장기적, 점진적 과제라 말할 일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만큼, 서두르면 그만큼 피해를 줄일 수 있으니 당장 해야 할 비상조치다. 국가가 책임을 질 수밖에 없을 터, 나는 이를 ‘공공보건의료 국가책임제’라 주장한다.
<김창엽 |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사)시민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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