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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19일, 뉴욕시는 흥미로운 프로젝트 제안요청서 하나를 공개했다. ‘Applied Sciences Facility in New York City’라는 이름의 제안요청서에서 뉴욕시는 새로운 형태의 응용과학 대학을 설립하려 한다며 이를 위한 부지 무상제공(99년 임대)과 설립비 1억달러(약 1200억원) 지원을 약속했다. 블룸버그 시장이 뉴욕시를 실리콘밸리와 같은 첨단 산업과 창업의 중심지로 변모시키기 위해 대학 유치를 추진한 것이다. 이 야심찬 계획에 스탠퍼드대, 컬럼비아대, 카네기멜론대 등 전 세계 17개 대학이 7개의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제안서를 제출했다.

5개월 뒤, 뉴욕시는 입찰경쟁의 승자로 미국 코넬대와 이스라엘 테크니온대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이들은 2017년까지 1차 공사를 마치고 입주 후 단계적 확장을 통해 2043년 캠퍼스 건설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두 대학의 이름을 따 새로운 대학을 코넬텍(Cornell Tech)으로 명명했다.

하지만 코넬텍의 개교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캠퍼스의 1차 완공 시기는 2017년이었지만 코넬텍은 대학 설립을 주도할 초대 학장을 40일 만에 선임하고 2012년 대학원 신입생을 선발해 사업자 선정 후 1년 만에 개교했다. 캠퍼스 1차 완공까지 4년이나 남은 시점이었지만 뉴욕시와 코넬텍은 기다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기다릴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뉴욕의 핵심 산업인 금융, 미디어, 법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이 실리콘밸리 기술기업들이 제공하는 혁신적인 서비스에 밀려 쇠퇴해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단 하루도 지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코넬텍은 캠퍼스 예정 부지에서 10㎞ 떨어진 구글 뉴욕 사옥의 일부(2000㎡)를 빌려 조촐하게 개교했고 2017년 신축 캠퍼스 이전까지 4년간 임대교사 생활을 이어갔다.

우리나라에서도 곧 새로운 대학이 하나 개교한다. 세계 유일의 에너지 특화 대학을 지향하는 한국에너지공대다. 대학 유치를 위한 지자체의 노력과 발빠른 개교에서 코넬텍과의 유사점이 보인다. 코넬텍이 뉴욕시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것처럼, 한국에너지공대도 전남도와 나주시가 부지를 무상제공하고 향후 10년간의 운영비도 일부 지원한다. 한국에너지공대도 에너지산업 선도를 위한 국가적 필요성과 그 시급성을 감안해 캠퍼스 완공 전 개교를 택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인류에게 새로운 에너지 기술의 연구와 개발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 촌각을 다투는 시기에 정교하게 설계된 에너지 5대 분야 연구와 교육으로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기여할 대학이 우리나라에 개교하게 된 것을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쁘게 생각한다. 일각에서 개교를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닌가 우려를 표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늦었다.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혁명 시기 대비 1.5도 이상 상승하면 폭염, 혹한 등 기상이변으로 전염병, 해수면 상승, 식량 부족과 같은 전 지구적 재난이 일어날 수 있다.

 

기후변화 시계(climateclock.world)에 따르면 1.5도 상승까지 남은 시간은 현재 기준으로 7년 170일이다. 한국에너지공대가 새로운 에너지 기술 개발로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을 늘릴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길 기대해 본다.

김영기 | 시카고대 석학교수·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차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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