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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006년 10월9일 1차 핵실험을 하자, 대응책으로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 조치를 취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각계에서 흘러나왔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중단이 아닌 정상 가동을 선택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인고도 모르는 채 그 후에도 2차 핵실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3차 핵실험, 4차 핵실험 등 꾸준히 남북관계를 위협하는 행동을 이어나갔다. 그럴 때마다 개성공단은 남북 양측에서 ‘북핵의 지렛대’가 되어 최소인원 체류, 잠정 중단, 재가동 등을 반복하다가 2016년 2월 ‘전면 중단’에 처해지는 운명을 맞았다. 전면 중단의 사유는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이 북한 핵개발 실험과 대륙간탄도탄 부품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고 확신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도 미처 보지 못한 개성공단의 진면목이 있다.
개성공단의 공장구역은 우리나라 산업단지 총면적에서 2%가 채 안되고, 입주기업 125개사가 점유한 면적 비중은 1%에도 이르지 않는다. 그런데 꼼꼼히 살펴보면 남과 북에서 개성공단만큼 내실 있는 알짜배기가 없다. 개성공단은 60대 1의 높은 입주경쟁률을 보였다. 개성공단 첫 생산품인 통일냄비는 세계 명품들도 매장을 잡기 어렵다는 유명 백화점에서 단 하루 만에 완판되기도 했다. 또한 단기간에 이룬 높은 공장 가동률과 생산량 증가세 등은 기존 산업단지와 비교할 수 없는 혁혁한 성과였다.
개성공단은 해외생산지에 대한 입지 대안으로서 우리 기업들의 선택권을 넓혀준다. 임금수준이 나날이 상승하고 있는 중국, 베트남, 인도 등 현지 생산지로부터 본국회귀(리쇼어링)를 결정한 기업들이 안착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대상 업종의 미래 확장성도 높다. 비록 지금은 중소기업형 업종, 즉 섬유, 가죽제품, 전기부품 등이 주류를 이루지만 서울로부터 60㎞ 떨어진 수도권 지역의 대규모 개성공단 공간은 어떤 산업의 입지조건으로도 매력적이다. 미래 4차 산업시대에서도 삼성동 테헤란밸리, 여의도 금융센터 등과 연계해 생산 테스트베드 및 지원서비스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
산업단지의 리모델링은 수시로 일어난다. 과거의 구로공단이 현재의 구로디지털단지가 된 것처럼, 또 삼성전자의 수원사업장처럼 향후에 개성공단 내에 삼성전자 개성사업장이 들어서지 말라는 법은 없다. 순수 산업입지로서도 독립적 경제성을 지닌 최고 투자프로젝트라는 것이 개성공단에 대한 일반적 평가다.
북한에서 남북협력 경제특구의 성과는 남한에서보다 훨씬 혁혁하다. 남측에서 개성공단 중단의 빌미가 될 정도로 경제적 측면에서 외화가득 성과도 쏠쏠했지만 정치적으로도 3대에 걸친 선대의 유훈사업을 존중하고 계승해나가는 어린 지도자의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도 일조했다.
개성공단은 북한의 특구이자 남한의 특구이다. 지리적으로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지역에 위치하며 북한 법치의 특구이지만 기반시설 건설의 투자 주체나 생산활동은 남한의 기업가와 경제인이 담당한다. 북한특구의 성공 자체가 남한의 성공인 것은 개성공단이 가진 이와 같은 독특한 속성에 기인한다.
개성공단 폐쇄는 비단 기업가뿐 아니라 남과 북의 근로자 개인에게 너무 큰 피해를 입혔다. 그들의 일상을 없앤 것이다. 직장에 출근하고, 동료들과 어울리고, 월급을 받아 가족을 부양하는 등등 많은 일들이 개성공단 가동으로부터 시작되고 영위됐다. 남한에서 한때 볼 수 있었던, 종로에서 개성공단으로 출근하기 위해 줄지어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광경을 이제는 볼 수 없다. 북한 근로자들이 개성 시내에서 공단까지 이동수단으로 운행됐던 순환버스들은 공단 내에 방치됐다. 멈춰버린 통근버스처럼, 방치된 순환버스처럼 남과 북 근로자의 삶도 멈추고 버려져서는 안된다. 다시 소생시켜야 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번쯤 다루어봄직한 주제이다.
<임성훈 |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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