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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7년 유엔 특별보고관으로서 집회·결사의 자유 실태 파악을 위해 여러 나라를 방문했다. 그중 한국에서는 역동적인 시민사회와 민주적 가치를 주장하는 대중들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국은 저항과 대중행동이라는 활기 넘치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거리로, 권력의 중심부로 나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민주적인 의무로 즐겁게 받아들인다.

방한 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 전통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다시 확인했다. 20주가 넘도록 부패한 정권에 맞서 주말마다 수백만명이 거리를 메웠고, 놀랍게도 이로써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다. 세계 각국에서 저항해도 소용없다 절망하는 활동가를 만날 때마다 나는 ‘한국을 보라. 민중이 단결하면 힘을 갖게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시민사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촛불집회에서도 볼 수 있었던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역할이다. 많은 나라에서 노조의 힘이 약화하고 있어서 한국 노조의 활약은 특히 인상적이다. 자유시장 근본주의와 함께 가는 세계화는 대기업의 권력을 대폭 확대했고 소수의 손에 부를 집중시켰다. 동시에 기업을 규제하는 국가의 힘과 의지는 훼손되었다. 투자 유치를 명분 삼아 국가가 규제 권한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글로벌 경제 질서의 변화는 노동자들이 집회·결사의 자유 행사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방한 당시 법과 관행에 ‘노조 할 권리’가 가로막힌 사례를 여러 차례 청취했다. 노동3권이 명시된 헌법이 있지만 노동자들이 발 딛고 선 현실은 장밋빛과는 거리가 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특히 하청노동자와 간접고용노동자, 그리고 교사, 공무원, 해고자들은 노조하기 매우 어렵다. 법은 이들의 결사의 자유를 사실상 박탈하고 있다. 사측이 직접 나서 어용노조가 교섭권을 독점적으로 누리는 다수노조로서 민주노조를 대체하도록 협동 작전을 펼친 발레오전장 사례는 충격적이었다.

파업권 역시 매우 제한적이다. 고용 조건에 대한 사안을 넘어서는 문제로는 파업을 할 수 없고, 정부가 “불법 파업”이라고 간주하면 파업 참가자는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을 받거나 손배소를 당한다.

경제적 조건 역시 나빠지고 있다. 고용불안과 소득불평등이 큰 문제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고, 이들 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의 62%에 그친다. 정규직 노동자라도 상황이 좋지는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임금인상률은 GDP성장률에 못 미쳤다. 이대로라면 한국 경제는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더 악화될 것이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불평등한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유력한 도구다.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을수록 소득불평등은 낮아진다. 이것은 고도로 복잡한 과학이 아니다. 그러나 집회·결사의 자유는 한국 사람들이 이를 자유롭고, 왕성하게, 아무런 간섭 없이 행사할 수 있을 때만 그 효과를 발휘한다.

반갑게도 문재인 대통령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ILO 핵심협약 87호, 98호를 비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 방문 보고서에서 강조한 것처럼 국가는 국제인권법이 보장하는 모든 권리의 행사를 촉진할 의무가 있다. 노조 할 권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중립적”이어서는 안된다. ‘중립’은 초국적 기업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짓밟는 것을 관망할 때 정부가 쓰는 단어다. 국가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손쉽고 안전하게 행사할 환경을 조성하는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짧지만 오늘날 한국은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에서 세계의 리더 역할을 하는 나라 중 하나다. 현재 한국의 리더십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세계와 세계 경제가 눈부신 속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권 보호 수단 역시 그만큼의 속도로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앞서 그 길을 이끌기 바란다. 정부가 이 길에서 벗어난다면 한국의 역동적인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마이나 키아이 | 전 유엔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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