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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한 언론사가 지금은 출마를 포기한 사람들까지 포함해 유력 대선주자 10인을 상대로 세금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모두가 증세에 동의하였다. 증세의 주된 이유로 대부분 복지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복지나 다른 공약을 위한 것이나 어쨌든 얼마의 돈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지 지금까지도 그 구체적인 생각들이 읽히지 않는다.

작년 법인세 인상 문제가 한창 쟁점이 되었을 때 필자 주변의 한 법률가는 법인세가 2017년 한 해 가장 뜨거운 대선공약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필자는 법인세를 비롯해 세금이 그렇게까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았다. 세금을 거두기 위해선 필시 누군가의 지갑을 열어야 할 터. 따라서 표를 의식하는 대부분의 대선주자들에게 세금, 특히 증세 문제는 아주 고약하다. 함부로 패를 보였다가는 부담이 느는 쪽의 표를 잃을 수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복지확대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고 소리 높여 말하지만 누가 얼마를 더 부담할지 그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잦아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증세 없는 복지를 외쳤던 것도 결국 같은 이유에서다. 세율인상만이 증세라는 말장난을 통해 늘어나는 세금의 부담주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돌릴 수 있었다.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문재인 경선캠프 사무실(더문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동영상으로 19대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듯 세금이 워낙 민감한 문제이기에 대선주자들이 전략적으로 모호한 태도를 가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어차피 속내를 정확히 내보일 것도 아니고, 또 애당초 공약(公約)이라 쓰고 공약(空約)으로 읽는 것으로 여겨 재원조달에 관한 세금 공부를 미뤘거나 아예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경선후보는 고소득자들의 소득세·상속증여세·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를 차례로 각각 강화한 후 법인세 실효세율을 높이고 그래도 세수가 부족하다면 법인세 명목세율을 올리겠다고 한다.

언뜻 보면 정책을 상세히 밝힌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호하다. 게다가 조세체계에 대한 공부도 좀 부족해 보인다. 고소득자들은 누구를 말하는지, 법인세 실효세율을 높이기 위해 들이댈 잣대는 무엇인지, 과세강화의 순서에서 상속세와 증여세가 왜 엉뚱하게 소득세와 자본소득세 가운데 위치한 것인지, 그리고 얼마씩을 올리겠다는 것인지 의문투성이다. 방금 거론한 사항 하나하나는 심각한 사회갈등과 큰 영향을 야기할 수 있어 만만하게 볼 상대들이 아니다.

민주당 안희정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경선후보도 역시 법인세 실효세율을 우선시한다. 그런데 법인세 실효세율을 마찬가지로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올리겠다는 것인지, 실효세율 인상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인지, 부족할 경우 그 다음의 복안은 무엇인지가 분명치 않다.

반면 상대적으로 조세정책을 뚜렷하게 내세운 이가 있다. 법인세를 공약의 최선봉에 세운 민주당 이재명 후보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구체적 숫자를 곁들여 법인세 증세를 주장한다. 또 연간 15조원 규모의 국토보유세 신설도 제시한다. 공약 가계부가 쉽게 읽히고, 간단하지만 세금 관련 디테일은 대선주자 중 가장 살아있다. 하지만 국토보유세는 여러모로 논란거리다. 또 세금으로 차별성을 부각시키려는 성급함도 보인다. 실효세율을 높이는 것은 세율의 정상화이고 명목세율을 올리는 게 증세라는 것, 그래서 실효세율을 우선 높이겠다는 문 후보가 증세를 말하는 것은 틀렸다고 비판한다. 증세는 학문적 쓸모가 없어 따로 새긴 개념이 없는 까닭에 세법학자들은 통상 사전적 정의를 받아들인다. 그에 따르면 문 후보나 이 후보 모두 증세를 말한 것이 맞다.

부족함이 있지만 그래도 이 후보나 문 후보와 같이 세금 문제에 대해 생각을 밝힘이 옳다. 공약실현에 필요한 재원조달계획이 분명하게 제시돼야 그게 진짜 공약이다. 그래야 정책을 제대로 검증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개선도 이뤄진다. 세금에 관한 생각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면 대선주자로서 자격미달이다. 그런 이들에게서 나오는 말들은 허언일 가능성이 높다. 대선주자들에게 세금이란 무엇인가? 그 생각이 어떤 것이든 유권자들이 알 수 있도록 내보여야 한다.

김현동 | 배재대 교수·조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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